요즘 내가 왜 이렇게 예민할까요?
감정조절이 안 되는 당신, 지금 필요한 건 정신력이 아니라 회복력입니다.
안녕하세요. 백록담한의원 입니다.
진료실에 들어오자마자 한숨부터 쉬시는 분들이 있어요.
“선생님, 저 요즘 이상해요. 왜 이렇게 욱하는지 모르겠어요.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화가 확 올라와서 스스로도 놀랄 정도예요.”
잠도 깊이 못 자고, 두근거리는 날이 많고, 감정이 진정이 안 됩니다.
“가족들도 ‘왜 그렇게 예민하냐’고 해요. 근데 저도 왜 그런지 모르겠거든요. 그냥 확 올라와요.”
이런 말씀, 의외로 자주 듣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내가 나이 들면서 성격이 이렇게 변한 건가?” 하고 걱정하시죠.
하지만 전 이럴 때 항상 이렇게 말씀드려요.
“그건 성격이 아니라, 회로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요즘 이런 분들이 늘고 있어요. 마치 신경이 다 곤두서 있는 것처럼, 작은 일에도 감정이 폭발하고, 밤에는 잠이 안 오고, 몸은 계속 긴장 상태인데 정작 집중은 안 되는 상태.
예전에는 이런 상태를 ‘신경쇠약’이라고 불렀어요. 지금은 그런 진단명이 사라졌지만,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여전히 유효하죠.
몸과 마음 전체가 탈진하고 조절이 풀려 있는 상태. 그런데 이걸 단지 ‘불안’, ‘우울’, ‘분노’ 중 하나로 딱 잘라 설명하기에는 너무 복합적이에요.
우리가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건 뇌, 특히 전두엽 덕분인데요. 이 전두엽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충분한 수면, 안정된 혈당, 적당한 신경계 밸런스가 있어야 뇌가 감정을 눌러주는 브레이크 역할을 해줘요.
그런데 최근처럼 피로가 누적되고 잠이 얕고, 스트레스가 반복되면 이 전두엽 브레이크가 고장 나요. 그러면 뇌는 ‘상황 판단’보다 ‘즉각 반응’에 몰입하게 되고, 그때 올라오는 감정은 브레이크 없이 바로 행동으로 튀어나오는 겁니다. 이건 내가 멘탈이 약해서 그런 게 아니라, 정말로 내 회로에 문제가 생긴 거예요.
한의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이로(易怒)’, 즉 쉽게 화를 내는 병으로 봅니다. 간기울결(肝氣鬱結), 담화상역(痰火上擾), 심신불교(心腎不交)... 다양한 변증이 가능하지만 공통적으로 말하는 건 ‘몸 안의 기운이 위로 치솟는다’는 겁니다.
몸이 허하면 감정을 버티는 기반이 무너지고, 스트레스로 기가 울체되면 언젠가는 반드시 화로 튀어나오게 돼요. 이건 단순히 '화를 참아야지' 한다고 해결되지 않아요. 내 안의 리듬이 이미 틀어져 있고, 감정을 잡아줄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라면 의지로는 역부족입니다.
그래서 치료도 단순한 억제가 아니라, 회복이 중심이 되어야 해요.
프로프라놀롤 같은 베타차단제,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은 순간적으로는 진정될 수 있지만 그게 내 몸의 밸런스를 회복시키는 건 아니잖아요.
한의학적 접근은 자율신경 회복과 기순 조절, 그리고 담화 제거를 동시에 진행합니다. 침치료는 승강실조를 바로잡고, 긴장된 교감신경을 진정시키며 경추 주변의 과긴장도 줄여줘요. 한약은 간기울결을 해소하고, 담습을 걷어내며, 심화(心火)를 내려 자율신경계를 조절해줍니다.
그리고 반드시 같이 봐야 할 게 생활 리듬이에요. 수면시간, 식사 간격, 활동량이 모두 불균형이라면 내가 아무리 약을 먹고 침을 맞아도 회복은 되지 않아요.
그래서 진료실에서는 이런 말씀을 자주 드리게 됩니다.
“예민한 게 아니에요. 오히려 몸이 아직 신호를 낼 수 있다는 건 반응성이 살아 있다는 뜻입니다.”
진짜 위기는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무기력 상태예요. 화가 나고, 긴장이 되고, 기분이 출렁이는 지금은 아직 몸이 나에게 경고등을 켜주는 중이에요.
지금 필요한 건 감정을 억누르려는 ‘정신력’이 아니라, 감정이 다시 조절 가능한 리듬을 회복하는 ‘회복력’입니다.
#신경쇠약 #감정기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