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이 저려요 증상 원인이 뭘까요?

안녕하세요 백록담한의원 최연승 한의사 입니다.

얼마 전 진료실에 한 40대 여성분이 찾아오셨습니다. 몇 년간 이어진 과로와 스트레스에 많이 지쳐 보이는 분이셨죠. 그분의 고민은 이것이었습니다.

'원장님, 온몸에 엷은 거미줄이 쳐진 것 같아요. 스멀스멀 저리고, 감각이 꼭 남의 살 같아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미 여러 병원을 거치며 MRI까지 찍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늘 같았다고 합니다.

'검사상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안도감보다는 더 깊은 막막함에 빠지게 되죠. 내 몸은 분명히 힘든 신호를 보내는데, 세상은 '정상'이라고 하니, 결국 '내가 유별난가?', '나만 이렇게 예민한가?'하는 자책과 고립감에 빠지게 되는 겁니다.

혹시 지금 비슷한 경험을 하고 계신가요? 오늘 우리는 이 답답한 증상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 지도를 함께 펼쳐보려고 합니다.

내 저림의 좌표 읽기: 분포와 결

첫 번째 단계는, 내 저림이 지금 어디쯤에 위치하는지 그 '좌표'를 읽어보는 것입니다. 이 좌표는 두 가지 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분포', 즉 저림의 범위
  • '결', 즉 저림의 양상

분포

만약 저림이 항상 같은 곳, 예를 들어 오른쪽 손가락 두 개나 왼쪽 발등처럼 특정 부위에만 나타난다면, 그것은 '국소 저림'에 해당합니다. 이런 경우는 해당 부위의 신경이 눌리는 것과 같은 '구조적' 문제일 가능성이 있으니, 먼저 정형외과나 신경과에서 그 원인을 확인해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오늘 저희가 집중할 이야기는, 바로 '온몸이 저림'입니다. 여기저기 옮겨 다니거나, 양쪽 팔다리가 대칭적으로 저리거나, 몸 전체에 막연하게 나타나는 경우죠. 이것은 '기능적', '전신적' 문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림은 이 세 가지 중 어디에 가장 가까운가요?

  1. 전기가 오듯 찌릿찌릿, 따끔따끔한 느낌입니다. 비교적 날카롭고 선명한 감각이죠.
  2. 마취가 덜 풀린 듯 먹먹하고 둔한 느낌입니다. 감각이 무뎌지고 남의 살처럼 느껴지는 경우입니다.
  3. 벌레가 스멀스멀 기어가는 듯한 불쾌한 느낌입니다. 딱히 아프진 않은데, 뭔가 계속 신경 쓰이고 애매한 감각이죠.

이렇게 내 저림의 분포와 결을 구분해서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막연했던 증상의 윤곽을 뚜렷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윤곽은, 곧 우리가 살펴볼 원인을 찾아가는 아주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왜 검사로는 원인을 찾을 수 없을까?

자, 그럼 여기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 나옵니다. '왜 MRI나 CT 같은 최첨단 장비로도 내 몸의 이상을 찾을 수 없었을까요?'

그 이유는, 현대의학의 검사 장비들이 주로 우리 몸의 '구조', 즉 '부품'의 고장을 찾는 데 매우 특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디스크가 터져 나왔거나, 혈관이 막혔거나, 종양이 생긴 것처럼 눈에 보이는 문제를 잡아내는 데는 정말 탁월하죠.

하지만 지금 몸이 보내는 신호는, 그런 '부품 고장'의 문제가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가 환자분들께 자주 드리는 비유가 하나 있는데요. 우리 몸을 자동차라고 한번 생각해보죠. 지금 몸은, 특정 부품이 망가진 상태가 아니라, '자동차의 연료(血)는 거의 비어있고, 배터리(氣)는 방전 직전인' 상태와 같습니다.

이런 차를 최첨단 장비가 갖춰진 정비소에 가져가면 어떻게 될까요? 정비사는 엔진, 타이어, 핸들 같은 모든 부품을 꼼꼼히 스캔한 뒤 이렇게 말할 겁니다.

"손님, 차체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병원에서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듣게 된 이유일 수 있습니다. 부품은 멀쩡하지만, 차를 움직일 근본적인 동력과 연료가 바닥난 상태. 이것이 바로 한의학이 주목하는 '기능'의 문제입니다.

한의학의 진단: '막힘'이 아닌 '고갈'의 문제

그렇다면 한의학은 이 '연료가 없고 방전된 상태'를 어떻게 진단하고 설명할까요? 많은 분들이 '저리다'고 하면, 막연히 '혈액순환이 안 되나?' 생각하고 혈액순환제를 찾으시곤 합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문제의 핵심을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의학에서는 저림을 볼 때, 가장 먼저 이것이 '막혀서(實證)' 생긴 문제인지, '부족해서(虛證)' 생긴 문제인지를 크게 구분합니다.

저희가 앞서 말한 '국소 저림'은 '비증(痺證)', 즉 '막힐 비' 자를 쓰는 병에 가깝습니다. 고속도로 특정 구간이 사고로 꽉 막힌 것처럼, 기운과 혈액의 흐름이 물리적으로 막혀서 생긴 문제입니다.

하지만 '온몸이 저리는' 증상은, '기혈부족(氣血不足)', 즉 우리 몸의 에너지원인 기(氣)와 영양물질인 혈(血)이 모두 '고갈'된 '허증(虛證)'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특히, 아까 세 가지 '결' 중에서 두 번째, '마취가 덜 풀린 듯 먹먹하고 둔한' 마비형 저림은, 바로 이 기혈부족 상태를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신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길은 뚫려 있는데 그 길 위를 달릴 자동차도, 자동차를 움직일 연료도 모두 부족한 상태인 것이죠. 이것이 바로 검사로는 보이지 않지만, 몸이 느끼는 불편함의 진짜 정체일 수 있습니다.

무엇이 내 몸의 연료와 배터리를 앗아갔나?

그렇다면 여기서 또 다른 질문이 생깁니다. 멀쩡하던 내 몸의 기운과 혈액, 즉 연료와 배터리는 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고갈되어 버린 걸까요? 그 원인은 아주 멀리 있지 않습니다. 바로 우리 대부분이 매일같이 겪고 있는 '소모적인 삶' 그 자체에 있습니다.

밤낮없이 이어지는 스트레스와 긴장 상태, 부족한 수면, 끼니를 대충 때우는 불규칙한 식사, 보이지 않는 감정노동, 그리고 쉬지 않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달려온 시간들까지. 혹은 큰 병이나 수술을 겪고 난 뒤에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경우도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 몸의 한정된 에너지와 영양물질을, 회복될 틈도 없이 계속해서 소모시킵니다. 결국 몸의 운영 시스템, 특히 스스로 순환과 감각을 조절하는 자율신경계는 교란되고, 몸은 '에너지 절약 모드'에 들어갑니다. 손끝, 발끝까지 혈액을 보낼 여력조차 남지 않게 되는 것이죠.

결코 특별한 사건 때문이 아니라, 어쩌면 너무나 평범해서 알아차리지 못했던 일상이, 조용히 몸을 방전시키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치료의 논리: '뚫는' 치료가 아닌 '채우는' 치료

그렇다면 이 방전된 몸을 다시 예전처럼 되돌릴 방법은 없을까요? 희망적인 소식은, '상태'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한의학에는 바로 이 문제에 대한 명확한 해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한의학적 치료의 목표는 단순히 저림이라는 증상을 억지로 끄는 것이 아닙니다. 앞서 말한 '방전된 배터리를 다시 충전하고, 텅 빈 연료 탱크를 가득 채우는 것'. 즉, 우리 몸의 근본적인 동력과 영양을 회복시키는 데 있습니다.

먼저 침 치료는, 우리 몸의 엉클어진 '운영 시스템'을 재부팅하는 역할을 합니다. 과도하게 항진된 교감신경을 안정시키고, 기운이 막힌 곳을 소통시켜, 곧 들어올 연료와 에너지가 온몸 구석구석으로 잘 퍼져나갈 수 있도록 '길을 정비하고, 교통 시스템을 정상화'하는 것이죠.

그리고 한약 치료는, 이 과정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고갈된 '연료와 배터리' 그 자체를 직접 보충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환자의 상태에 맞춰 처방된 한약은, 부족해진 기(氣)와 혈(血)을 채워 넣어(보익기혈, 補氣補血), 우리 몸이 스스로 회복하고 정상적인 감각을 되찾을 수 있는 근본적인 힘을 길러줍니다.

이렇게 침으로 길을 열고 한약으로 근본을 채우는, '시스템 정상화'와 '자원 보충'이라는 두 가지 접근이 함께 이루어질 때, 우리 몸은 비로소 저림이라는 비상 신호를 멈추고 안정적인 상태로 돌아갈 수 있게 됩니다.

저림은, 몸의 절박한 신호입니다

오늘 우리는 원인 모를 전신 저림이라는, 안개처럼 막막했던 증상의 지도를 함께 그려보았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 저림은 유별나거나 예민해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한계에 다다른 몸이 보내는 가장 정직하고, 어쩌면 가장 절박한 '방전' 신호입니다.

이 신호를 '큰일 났다'는 불안으로만 해석하기 시작하면, 우리의 몸과 마음은 불필요한 긴장 상태에 빠져 신호를 더욱 증폭시키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 신호를 긍정적인 '기회'로 삼는 것입니다.

'아, 내 몸의 에너지가 정말 바닥났구나. 이제는 내 몸의 소리를 듣고, 근본을 돌봐야 할 시간이구나'

원인 모를 저림은 삶을 위협하는 적이 아니라, 삶을 더 건강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찾아온 '초대장'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회복의 여정에서, 몸의 균형과 상태를 살피는 한의학적 지혜는 아주 훌륭한 나침반이 되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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