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포성 건선은 정말 건선일까?” — 이름에 가려진 병의 정체

1. 붉은 피부와 하얀 각질, 여기에 고름까지?

손바닥이나 발바닥에 작고 노란 고름물집 같은 게 올라옵니다. 터지기도 하고, 딱지가 앉기도 하고, 가끔은 아프고, 열도 나고, 온몸이 욱신거릴 때도 있습니다. 대부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건선의 한 종류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오늘은 이 농포성 건선이라는 질환, 그 이름 아래 숨어 있는 진짜 정체를 이야기해보겠습니다.

2. 농포성 건선이란, 이름부터 묘합니다

이 질환은 고름처럼 보이는 작은 농포들이 피부 전체 혹은 손발바닥에 다발성으로 생기는 병입니다. 전신에 퍼질 수도 있고, 손바닥이나 발바닥에만 국한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건 이 농포가 감염 때문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세균도, 바이러스도 없는데 호중구가 피부 속에 몰려들어 무균 농포를 만든다는 것. 이게 바로 농포성 건선입니다. 하지만 이쯤 되면 의문이 하나 생깁니다. 왜 이걸 건선이라 부르는 걸까?

3. 면역 경로부터 다릅니다

일반적인 판상형 건선은 IL-23 → IL-17 → TNF-α라는 염증 경로를 통해 각질세포가 비정상적으로 증식하고, 피부가 붉어지고 두꺼워지고, 하얀 각질이 덮이게 됩니다. 하지만 농포성 건선은 다릅니다. 중심 경로는 IL-36입니다. 여기에 호중구를 불러들이는 G-CSF, IL-1β 등 이 작동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일부 환자들은 IL-36 수용체를 억제하는 유전자가 고장 나 있습니다. 조절이 안 되는 염증 루프. 결과는? 피부에 비정상적인 면역세포 침윤 → 농포 형성. 이건 사실 자가면역이라기보다는 자가염증 질환에 가깝습니다.

4. 단순히 경로만 다른 게 아닙니다

농포성 건선은 진행이 더 빠르고 전신 증상을 동반하며 체온이 올라가고 피로감, 전해질 이상, 탈수까지 생길 수 있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입원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응급 수준의 병태로 번질 수도 있습니다.

5. 그럼에도 왜 여전히 ‘건선’이라는 이름을 쓰는가

여기서 현실적인 문제들이 등장합니다. 조직학적으로 일부 유사한 소견이 있습니다(예: Kogoj 미세농양, 각질층의 염증세포 침윤). 면역경로 중 일부는 TNF-α, IL-17A처럼 일반 건선과 겹칩니다. 그리고 어떤 환자들은 기존에 판상형 건선을 앓고 있다가 농포형으로 전환되기도 합니다. 게다가 국제질병분류(ICD), 보험 체계, 진단 도구는 여전히 형태 기반입니다. 붉고 각질이 있고, 건선 병력도 있으니 건선으로 묶는 게 간편하죠.

6. 그러나 학계 내부에선 다르게 말합니다

실제로 일부 연구자들은 농포성 건선을 완전히 다른 병으로 보자고 주장합니다. Autoinflammatory keratinization disease (AiKD) 또는 Neutrophilic dermatosis의 한 분류로 재편하자는 의견도 있습니다. 특히 DITRA 증후군이라 불리는 IL-36 억제 유전자 결함 환자군은 병태부터 반응까지 완전히 다릅니다. 이들에게 건선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건 병의 본질을 가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7. 진짜 문제는 이름이 오해를 만든다는 것

환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 그냥 건선의 한 종류군요. 보습 잘 하고, 연고 바르면 낫겠네요. 하지만 농포성 건선은 그렇게 간단한 병이 아닙니다. 반응도 다르고, 경과도 다르고, 때론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는 질환입니다. 이름 하나 때문에 진단이 늦어지고, 치료가 엇나가고, 예후가 악화될 수도 있는 겁니다.

8. 아직은 편의상 묶이지만, 곧 바뀌게 될지도 모릅니다

농포성 건선은 겉으로는 건선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면역 반응은 완전히 다른 길을 걷고 있습니다. 앞으로 의학은 모양이 아니라 기전, 증상이 아니라 면역 프로파일로 질환을 재정의할 겁니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이 병을 더는 건선이라 부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