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치 아래 누르면 통증, 심하비 심하비경

안녕하세요 백록담한의원 최연승 한의사 입니다.

마음의 쓰레기통, 명치

괜찮다가도,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있거나 신경 쓰이는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꽉 막히고 아파오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명치 끝, 혹은 명치 바로 아랫부분이죠.

많은 분들이 이런 불편함으로 진료실을 찾아오십니다. 답답한 마음에 위내시경까지 받아봤지만, 의사에게 듣는 말은 대부분 비슷합니다.

"신경성 위염이네요."
"스트레스성 위염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하지만 분명히 아픈데, 검사상으로는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이 상황이 우리를 더 답답하게 만듭니다.

어쩌면 그 이유는, 우리가 그동안 이 명치라는 공간을 오해하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한의학에서의 명치

한의학에서 명치 부위는 ‘심하(心下)’, 즉 '마음의 바로 아래'라고 부릅니다. 말 그대로 마음의 상태가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곳이죠.

이곳은 소화되지 않은 음식이 쌓이는 곳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처리되지 못한 감정이 쌓이는 '마음의 쓰레기통'이 되기도 합니다.

통증의 의문

오늘 이야기는 바로 이 명치 아래 통증이, 단순한 위장 문제가 아니라 우리 마음의 신호일 수 있다는 관점에서 시작합니다.

내시경은 깨끗한데 왜 아플까?

하지만 가장 큰 의문은 이것입니다. '마음의 문제라면, 왜 몸이, 그것도 명치가 아픈 걸까요?' 그리고 '왜 내시경으로는 그 원인이 보이지 않는 걸까요?'

그 답은 '구조'와 '기능'의 차이에 있습니다. 위내시경은 위장의 '구조'를 보는 아주 훌륭한 도구입니다.

구조와 기능의 차이

위벽에 상처가 났는지, 염증이나 궤양이 있는지, 혹은 혹이 생겼는지 등, 위장의 '벽지'나 '인테리어'에 생긴 문제를 찾아내는 데는 아주 정확하죠.

하지만 내시경 카메라가 볼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위장이 실시간으로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느끼는지'와 같은 '기능'의 영역입니다.

진단의 첫걸음: 답답한가, 아픈가?

그렇다면 한의학은 이 '기능'의 문제를 어떻게 진단할까요? 그 첫걸음은 아주 간단한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명치가 그냥 답답하기만 한가요, 아니면 눌렀을 때 아픈가요?"

만약 통증 없이, 그저 꽉 막힌 듯 답답하기만 하다면, 이 것은 주로 '기(氣)'의 흐름, 즉 기능적인 소통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하지만 그 부위를 손으로 꾹 눌렀을 때 '악' 소리가 날 정도로 뚜렷한 통증이 느껴진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집니다.

심하비(心下痞)와 심하비경(心下痞硬)

한의학에서는 이 두 가지 상태를 구분하는 아주 오래되고 정교한 진단명이 있습니다. 바로 '심하비(心下痞)'와 '심하비경(心下痞硬)'입니다.

심하비(心下痞)

먼저 심하비(心下痞)는, 말 그대로 '명치 아래(心下)가 답답하다(痞)'는 뜻입니다. 앞서 말한 '교통 체증' 단계에 해당하죠.

심하비경(心下痞硬)

반면 심하비경(心下痞硬)은, 그 답답함에 더해 '단단하다(硬)'는 감각이 추가된 것입니다. 이는 교통 체증이 오래되어 '접촉 사고'까지 난 상태에 해당합니다.

스트레스가 위장을 공격하는 법: 간울범위(肝鬱犯胃)

그렇다면 애초에 왜 이런 '심하비'나 '심하비경'이 생기는 걸까요? 특히 스트레스를 받을 때 증상이 심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의학에서는 그 원인을 '위장'이 아닌, 바로 그 이웃 장기인 '간(肝)'에서 찾습니다.

병의 깊이: 허(虛)와 실(實)의 줄다리기

그렇다면 이렇게 뭉쳐서 단단해진 '심하비경'은 단순히 나쁜 것이 쌓인 '실증(實證)'일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여기서 병의 깊이를 이해하는 중요한 개념이 바로 '본허표실(本虛標實)'입니다.

치료의 논리: '화해'시킬 것인가, '공격'할 것인가?

그렇다면 이 복잡한 상태를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요? 한의학의 접근법은 진단에 따라 명확하게 달라집니다.

위장을 넘어, 마음의 긴장을 푸는 일

오늘 우리는 명치 아래의 통증이 단순한 위장병이 아닐 수 있다는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보았습니다.

이곳의 통증은,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뿐만 아니라 처리되지 못한 감정과 스트레스가 쌓여 보내는 몸의 신호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근본적인 해결책은 단순히 위장약을 먹거나 위장을 보호하는 데만 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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