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이 빠지는 느낌? 이유가 뭘까요?

안녕하세요, 백록담한의원 한의사 최연승입니다.

“선생님, 이러다 정말 큰일 나는 건 아닐까요?”

며칠 전, 40대 후반의 한 선생님이 진료실에 찾아오셨습니다. 늘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분들이 그렇듯, 자신의 몸에 대해서는 애써 담담한 표정이셨죠. 그분이 조심스럽게 꺼낸 이야기는 이것이었습니다.

“오후만 되면 몸이 땅으로 푹 꺼지는 것 같아요. 정말... 밑이 빠지는 느낌이 이런 건가 싶어요. 수험생 딸 뒷바라지에, 학교 일에... 정신없이 살다 보니 제 몸이 이렇게 된 줄도 몰랐네요.”

얼마 전 용기를 내어 찾아간 산부인과에서는, “자궁이 약간 내려오긴 했는데, 아직 수술할 정도는 아니니 지켜보자”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어쩌면 환자에게 가장 힘든 것은 증상 그 자체가 아니라, 자신의 불안한 감각을 '아직 괜찮다'는 말로 덮어야 하는 그 막막함일 겁니다.

그분은 제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이러다 정말 큰일 나는 건 아닐까요? 그냥 이렇게 운동이나 하면서 버티는 수밖에 없나요?”

오늘 이야기는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해먹은 아직 찢어지지 않았다

많은 분들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두렵게 떠올리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정말로 무언가 빠지고 있는 걸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 느낌은 단순한 착각이 아닙니다. 우리 몸의 지지 구조가 약해지면서 실제로 장기들이 아래로 내려앉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감각이 맞습니다.

다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 '과정'입니다. 우리 몸의 골반 안에는 자궁, 방광, 직장 같은 중요한 장기들이 있습니다. 이 장기들은 '골반저근'이라는 이름의 튼튼한 해먹 위에 편안하게 얹혀 있죠.

그런데 이 해먹은 혼자서만 힘을 쓰는 게 아닙니다. 위에서는 횡격막이 뚜껑처럼 덮어주고, 앞과 옆에서는 복근이, 뒤에서는 척추 주변 근육들이 든든한 벽이 되어줍니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의 '코어 실린더'처럼 협력하며 우리 몸의 중심을 잡고 장기들을 받쳐줍니다.

'밑이 빠지는 느낌'은 이 해먹이 찢어지거나 끊어지기 전에, 해먹을 지탱하던 실린더 전체의 압력과 균형이 무너지면서 나타나는 첫 번째 신호입니다. 구조적인 탈출이 일어나기 전에, 기능적인 하강이 먼저 시작되는 것이죠.

40대의 중력

왜 이 증상은 유독 40대 중후반의 여성들에게 집중되는 걸까요? 여기에는 두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1. 에너지의 고갈: 출산과 육아, 쉼 없는 가사와 직장 생활, 그리고 감정적인 스트레스까지. 이 모든 것들이 '코어 실린더'를 튼튼하게 유지할 근본적인 에너지를 끊임없이 소모시킵니다. 버틸 힘이 바닥나는 것이죠.
  2. 호르몬의 변화: 폐경 이행기를 거치면서, 우리 몸의 근육과 인대를 쫀쫀하고 탄력 있게 유지해주던 여성호르몬이 줄어듭니다. 같은 힘으로 버텨도, 조직 자체가 예전보다 느슨해지고 약해지기 쉬운 환경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40대 후반이라는 시기는, 평생 써온 에너지는 바닥을 보이는데, 몸의 물리적인 조건마저 약해지는, 우리 몸의 지지력이 가장 큰 시험대에 오르는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 몸의 부력(浮力)을 찾아서

이 지점에서 저는 늘 한 가지 질문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 모든 현상의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

한의학은 이 복합적인 문제를 단 하나의 개념으로 꿰뚫어 설명합니다. 바로 '중기하함(中氣下陷)'입니다.

우리 몸을 하나의 거대한 뜨거운 기구라고 상상해 보겠습니다. '중기(中氣)'란, 우리 몸의 중심인 소화기에서 만들어내는 따뜻하고 강력한 공기와 같습니다. 이 공기가 충분히 뜨거워야, 기구는 중력을 이기고 하늘에 가볍게 떠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몸의 장기들을 제자리에 붙잡아두는 '위로 들어 올리는 힘'입니다.

하지만 수십 년간 연료를 소모하고 버너의 불꽃이 약해지면, 기구 안의 공기는 서서히 식어갑니다. 그러면 기구는 부력(浮力)을 잃고, 천천히, 하지만 분명하게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합니다.

'밑이 빠지는 느낌', 오후만 되면 심해지는 피로감, 왠지 모르게 뻐근한 허리. 흩어져 있던 이 모든 증상들은 사실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바로 몸을 위로 띄우는 힘, '중기'가 고갈되어 아래로 꺼지는 '하함(下陷)' 현상인 것이죠.

다시, 버너에 불을 붙이는 일

그렇다면 이 가라앉는 기구를 다시 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많은 분들이 케겔 운동을 먼저 떠올립니다. 물론 중요합니다. 해먹의 특정 부위를 튼튼하게 만드는 훈련이니까요. 하지만 약해진 버너의 불꽃은 그대로 둔 채, 해먹의 천만 깁는다고 해서 기구가 다시 떠오를 수는 없습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약해진 버너의 불꽃을 되살려, 기구 전체에 다시 따뜻한 공기를 채우는 것입니다. 한의학에서는 이를 '보기승양(補氣升陽)', 즉 기운을 보충하여 양기를 위로 끌어올린다고 표현합니다.

이는 단순히 케겔 운동이라는 '부분'의 훈련을 넘어, 호흡을 통해 횡격막을 움직이고, 자세를 바로잡아 코어 전체를 활성화하며, 필요하다면 한약을 통해 고갈된 '중기' 자체를 보충하는 총체적인 재건 과정을 필요로 합니다.

몸이 아래로 가라앉는다는 신호는, 절망의 끝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제는 내 몸의 근본을 돌보고, 다시 떠오를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라는 가장 정직한 초대장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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