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가루(글루텐) 끊었는데… 왜 속은 여전히 불편할까요?

큰맘 먹고 좋아하던 빵과 면을 끊었습니다. '글루텐프리'가 좋다는 말에, 이제 지긋지긋한 복통에서 해방될 거라 굳게 믿었죠. 하지만 몇 주가 지나도 배에 차는 가스와 더부룩함은 여전하지 않으신가요?

"혹시 나는 글루텐 문제가 아닌가?" "대체 뭐가 문제인 거지?"

하며 좌절하고 계셨을지 모릅니다. 문제는, 우리가 범인을 잘못 지목했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진짜 범인은 '글루텐'이 아닐 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15년간 수많은 만성 소화기 질환환자분들의 진짜 원인을 찾아드린 백록담한의원 최연승 원장입니다.

오늘 이 글을 끝까지 읽으신다면, 왜 글루텐프리를 해도 속이 불편한지, 밀가루 속에 숨어있던 '진짜 범인'의 정체는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얻게 되실 겁니다.

진짜 범인은 '글루텐'이 아니었다?

우선 오해는 없어야 합니다. '글루텐'이 정말로 문제인 분들도 분명 있습니다. 밀가루 속 단백질 성분인 글루텐은 '셀리악병' 환자에게는 면역 반응을 일으키고, '비(非)셀리악 글루텐 민감성'을 가진 분들에게는 불편한 증상을 유발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한국인 중 셀리악병 유병률은 매우 낮으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의 문제는 글루텐이 아닌 다른 곳에 있습니다.

진짜 범인, '프룩탄(Fructan)'을 아시나요?

밀, 보리, 호밀에는 글루텐뿐만 아니라, '프룩탄'이라는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습니다. 이 프룩탄은 소장에서 잘 흡수되지 않고 대장에서 쉽게 발효되는 당 성분, 즉 '포드맵(FODMAP)'의 일종입니다.

우리가 여러 번 다뤘던 '가스 공장' 기억나시나요? 소장에서 흡수되지 않은 프룩탄은 그대로 대장으로 내려가 장내 미생물들의 훌륭한 먹이가 됩니다. 그리고 미생물들이 이 프룩탄을 발효시키는 과정에서 다량의 가스가 발생하여 복부팽만과 복통을 유발하는 것이죠.

잦은 트림과 방귀, 이제 그만 민망해 하세요!

가스의 진짜 원인과 해결법

"글루텐프리 했는데 왜 효과가 없었을까?"

바로 이 프룩탄 때문입니다. 글루텐프리 식단을 위해 밀가루를 끊으면, 자연스럽게 프룩탄 섭취도 줄어들어 증상이 잠시 좋아지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범인이 글루텐인 줄 알고 다른 고(高)프룩탄 식품들, 예를 들어 마늘, 양파, 양배추 등을 마음 놓고 드셨다면 어떨까요? 당연히 증상은 다시 악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습담(濕痰)을 만드는 밀가루의 끈적한 성질

한의학에서는 밀가루를 단순히 '글루텐'이나 '프룩탄'이라는 성분으로만 분석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 음식이 가진 고유의 '성질' 자체에 주목합니다. 혹시 밀가루로 반죽을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물을 붓고 치대면, 끈적끈적하게 달라붙고 하나의 덩어리로 뭉쳐지죠.

한의학에서는 밀가루가 가진 바로 이 '끈적하고 뭉치는' 성질이, 소화 기능이 약한 사람의 몸속에 들어가면 '습담(濕痰)'이라는 불필요한 노폐물을 만들기 쉽다고 봅니다.

진짜 원인을 찾아가는 여정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글루텐'이라는 용의선상에서 벗어나, 진짜 원인을 찾아 해결해야 합니다.

1. '글루텐 너머'를 보세요 (저포드맵 식단)

이제 우리의 목표는 '글루텐프리'가 아니라, '저포드맵(Low-FODMAP)' 식단이 되어야 합니다. 밀가루를 끊는 것에서 더 나아가, 진짜 범인인 프룩탄이 다량 함유된 다른 음식들, 특히 마늘, 양파, 파(흰 부분), 양배추 등을 함께 주의해야 합니다.

"아니, 그럼 한식을 어떻게 먹나요?" 하고 좌절하실 수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이는 평생 지속하는 것이 아니라, 증상이 심할 때 잠시 피하며 내 장을 쉬게 해주는 과정입니다.

2. '다른 용의자'도 확인하세요

만약 저포드맵 식단을 시도했음에도 불편함이 계속된다면, 범인은 다른 곳에 있을 수 있습니다. 유제품에 포함된 '유당'이 문제일 수도 있고, 특정 음식과 상관없이 스트레스 자체가 장을 예민하게 만드는 주된 원인일 수도 있습니다. 내 몸의 반응을 꾸준히 기록하고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3. 최고의 대안, '쌀'을 다시 만나보세요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글루텐과 프룩탄 걱정이 모두 없는,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탄수화물 공급원이 있습니다. 바로 '쌀'입니다. 밀가루 빵 대신 따뜻한 쌀밥을, 파스타 대신 담백한 쌀국수를, 과자 대신 고소한 누룽지나 쌀과자를 선택해보세요. 우리 장은 훨씬 더 편안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응답할 것입니다.

이제, 내 몸을 위한 '음식 탐정'이 될 시간

'글루텐프리'를 시도했는데도 효과가 없어 좌절하셨나요?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단서를 찾은 것입니다. '글루텐이 범인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알아낸 것만으로도, 우리는 진짜 범인을 찾기 위한 수사망을 훨씬 더 좁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의 목표는 음식을 무작정 두려워하는 대신, 내 몸의 반응을 세심하게 관찰하여 '나만의 유발 음식 리스트'를 만들어내는 똑똑한 '음식 탐정'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 '글루텐프리'를 시도했음에도 증상이 계속될 때, 이것이 바로 더 이상 혼자 고민하며 식단을 과도하게 제한하지 말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프룩탄', '유당' 등 진짜 원인을 체계적으로 찾아야 할 '골든타임'입니다.

오늘은 밀가루에 숨겨진 비밀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음식과 상관없이 장이 예민해지는 '장누수 증후군'이 근본 원인일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만간 기회가 된다면 자세히 다루어 보겠습니다.

더 이상 답 없는 식단에 지쳐있지 마세요. 정확한 원인을 찾으면, 우리의 밥상은 훨씬 더 자유롭고 풍요로워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