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멍하고 집중이 안 돼요… 혹시 ‘브레인포그’인가요?— 코로나 이후 달라진 뇌의 신호들
1. “그냥 피곤한 건 줄 알았어요…”
안녕하세요, 백록담한의원입니다.
혹시 요즘 이런 경험, 있으신가요?
- 회의 중에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잊어버린다
- 멍하니 앉아 있다가 중요한 일을 빠뜨린다
- 예전엔 쉽게 정리되던 일들이 갑자기 벅차게 느껴진다
- 문득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아는 사람인데 말이 막힌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게 됩니다.
“요즘 뇌에 안개 낀 것처럼, 뭔가 멍하고 잘 안 돌아가요.”
오늘 이야기할 주제는, 바로 이 ‘브레인포그(Brain Fog)’입니다.
이건 단순한 피로나 산만함과는 다릅니다. 몸은 멀쩡한데, 뇌만 따로 지친 듯한 이 기묘한 상태. 요즘처럼 코로나 이후의 시대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현상입니다.
2. 브레인포그라는 말, 원래 있던 건가요?
‘브레인포그(Brain Fog)’라는 표현은 사실 최근에 만들어진 신조어는 아닙니다. 의학적으로 정식 질환명은 아니지만,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일부 분야에서는 이 용어가 통용돼 왔습니다.
가장 먼저 사용된 분야는 기능의학(Functional Medicine)과 만성질환 환자들의 커뮤니티였습니다. 예를 들어 만성 피로증후군(CFS), 섬유근육통, 자가면역질환을 겪는 환자들이 자신의 상태를 묘사하기 위해 이 표현을 자주 사용했죠.
의사들도 “이건 집중력 문제다” 혹은 “인지 저하다”라고 기술하기 어려운 경우에, 비공식적으로 브레인포그라는 표현을 쓰곤 했습니다. 즉, 의학적으로 정의되지 않았지만, 현상을 잘 설명해주는 임상적 은어였던 셈입니다.
그러다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이 표현이 ‘의학계 공식 화두’로 떠오르게 됩니다. 코로나에 걸렸던 수많은 환자들이 한결같이 말한 거죠.
- “후각은 돌아왔는데, 머리가 멍해요.”
- “기억이 잘 안 나요.”
- “일을 하려는데 집중이 안 돼요.”
이제는 WHO도 ‘long COVID’ 증상의 일환으로 브레인포그를 언급하고 있으며, 의학 저널에서도 ‘Brain Fog’라는 단어를 제목에 직접 넣은 논문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비공식 용어가 공식화되는 과정을 전 세계가 함께 목격한 거죠.
3. 증상의 양상 — 단순한 피로와는 다릅니다
브레인포그는 ‘피곤하다’는 말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섬세하고, 주관적으로 괴롭습니다.
대표적인 증상을 나열해 보면 이렇습니다.
- 집중이 안 된다
- 기억이 흐릿하다
- 말이 막힌다
- 머리가 멍하다
- 업무 처리 속도가 현저히 느려진다
- 실수가 늘어나고, 자신감이 떨어진다
중요한 건, 이 증상들이 단순히 체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환자분들이 공통적으로 말합니다.
“자고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아요.”
“휴가를 다녀와도 머리는 여전히 무겁습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자기효능감의 붕괴로 이어집니다. 자신감이 사라지고, 업무 스트레스가 심해지고, 때로는 우울감과 불안까지 동반됩니다. 결국은 병이 아니라도 병처럼 살아가게 되는 상태. 그게 바로 브레인포그입니다.
4. 왜 코로나 이후에 이렇게 많아졌을까?
이 질문을 이해하려면, 코로나 바이러스의 작용 방식을 알아야 합니다. 코로나19는 ‘ACE2 수용체’를 통해 세포에 침투합니다. 이 수용체는 폐, 심장, 장기, 신장, 혈관, 그리고 뇌혈관의 내피세포에도 존재합니다.
즉, 코로나는 단순한 호흡기 감염이 아니라, 혈관과 자율신경, 대사 시스템 전체를 교란하는 바이러스인 셈입니다.
감염 후 회복된 것 같아도, 미세한 염증 반응이 계속 남아 있고 혈류 순환과 산소 공급이 원활하지 않고 자율신경의 조절 능력이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결과,
- 잠을 자도 회복되지 않고
- 낮에 멍하고,
- 집중력이 무너지고,
- 일상 업무 수행이 버거워지는 상태가 나타납니다.
특히 젊고 건강하던 사람들조차 이런 증상을 호소하기 때문에 단순한 ‘체력 저하’라고 보기 어려운 겁니다.
5. 한의학적으로는 어떻게 바라볼까?
한의학에서는 오래전부터 이런 상태를 ‘여병(餘病)’이라고 불러 왔습니다. 병이 다 나은 줄 알았지만, 병의 기운이 남아서 회복이 지체되는 상태. 혹은 ‘여열미청(餘熱未清)’, 즉 염증이나 탁기운이 다 빠지지 않았다는 개념이죠.
또한 ‘담탁조뇌(痰濁阻腦)’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몸 안에 탁한 기운이 맑은 뇌의 기능을 가로막는다는 개념입니다.
→ 이건 뇌 자체에 구조적 병변이 없더라도 기능적으로 흐릿해질 수 있다는 한의학적 인식을 반영합니다.
현대적으로 보면 자율신경 불균형, 미토콘드리아 에너지 대사 저하, 장뇌축(Gut-Brain axis)의 기능 저하 이런 개념들과 연결 지을 수 있죠.
즉, 브레인포그는 단순히 머리의 문제가 아니라, 몸 전체가 맑은 에너지를 뇌까지 전달하지 못하는 문제로 보는 것입니다.
6. 치료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한의학적인 치료는 크게 세 가지 축으로 진행됩니다.
- 침 치료 – 뇌를 깨우고, 자율신경을 안정시키기
- 백회, 사신총, 인당 → 뇌 개통신문
- 내관, 태충 → 감정 안정과 심신 연결
- 풍륭, 족삼리 → 담탁 제거와 소화 회복
- 신수, 명문, 기해 → 장기력 보충, 에너지 회복
- 약재 치료 – 개규성신, 보심비신, 조담화탁
- 향이 강한 약재들 (석창포, 원지, 백복신 등) → 뇌를 자극하고 감각 회복
- 장기적으로는 심비양허, 신정부족에 따라 맞춤 처방
- ‘죽여’처럼 병후 회복을 돕는 전통적 약물도 사용
- 생활 루틴 설계
- 오전 햇빛 노출 → 멜라토닌-세로토닌 리듬 회복
- 단순한 뇌 훈련 → ‘계획 세우기, 순서 정하기, 기억하기’ 같은 작업 반복
- 수면, 소화력, 감정 기복 관리 → 브레인포그 회복의 핵심 조건
7. 절망감이 병보다 먼저 오는 병
브레인포그는 ‘두뇌의 고장’이 아닙니다. ‘기능의 혼란’이고, ‘회복의 지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돌이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증상이 주는 감정적 고통은 매우 큽니다. 치매처럼 느껴지고,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기 어렵고, 검사에서는 아무것도 안 나오고, 그게 사람을 더 지치게 만들죠.
이럴 때 필요한 건,
“당신의 증상은 실제입니다”
라는 말 한마디입니다. 한의학은 원인을 몰라도 몸 전체의 흐름을 보고 조절해주는 의학입니다. 그리고 이럴 때,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브레인포그, 혼자 참고 넘기지 마세요. 제대로 된 해석과 접근이 필요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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