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기침 계속되는 역류성 후두염, PPI 먹어도 낫지 않는 이유?
— “목에만 오는 역류, 이 병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1. “기침이 감기가 아니래요”
안녕하세요. 백록담한의원입니다.
진료실에서 종종 이런 말씀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감기인 줄 알고 기침약도 먹고, 감기약도 먹었는데요… 한 달이 지나도 안 나아요.”
“코는 안 막히고 열도 없고… 그냥 목이 자꾸 간질간질해서 헛기침이 나와요.”
“말을 조금 오래 하면 목이 칼칼해지고, 금방 쉰 소리가 나요.”
“밤에는 자다가 목이 타는 것 같아서 깨고요. 마른기침이 계속돼요.”
이렇게 3주, 4주, 아니 몇 달이 지나도 기침이 나아지지 않는데 병원에서는 “폐도 깨끗하고, 감기도 아니고… 그냥 좀 예민해서 그런 것 같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어떤 분은 위내시경까지 했지만 “식도도 위도 다 깨끗하대요.”
이쯤 되면 주변 사람들도 한마디씩 하죠.
“기침 좀 한다고 뭘 그렇게 유난을 떨어?”
“그 정도는 누구나 다 그래.”
하지만 정작 본인은 압니다. 이건 정말 일상에 불편한 수준이고, 밤잠까지 설치게 만든다는 걸요.
2. 병명은 있는데, 진단은 애매하다 — LPR이란?
이럴 때 등장하는 병명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역류성 후두염’, 영어로는 LPR (Laryngopharyngeal Reflux)입니다. 이건 위산이나 위 내용물이 위를 넘어서 식도를 지나, 후두와 인두, 즉 목구멍과 성대 근처까지 올라오는 상태를 말합니다.
하지만 이 병은 진단이 참 애매합니다. 내시경을 해도 식도는 멀쩡하고요, 위산이 산성인지 아닌지도 확실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LPR로 보입니다”라고 진단은 해도, 막상 “확실히 LPR이 맞습니다”라고 말하는 의사는 많지 않죠.
게다가 CT나 MRI처럼 눈에 보이는 이상도 잘 안 나오니까, 환자 입장에선 병은 있는데, 증거는 없는 병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더 답답하죠.
3. GERD와 LPR은 전혀 다른 병이다 — 개념과 역사
여기서 중요한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역류성 식도염’, 즉 GERD는 속쓰림, 트림, 신물, 흉통처럼 명확한 식도 증상이 있는 경우입니다. 그런데 LPR은 그보다 더 위쪽, 인두, 후두, 성대, 기도 입구에 증상이 나타납니다. 기침, 목 이물감, 쉰 목소리, 인두의 건조감 같은 게 전형적이죠.
LPR이라는 개념은 1990년대 들어서야 따로 정리되기 시작했는데요, 그 전까지는 그냥 GERD의 특이 증상 정도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두 병이 완전히 다른 임상 경로를 가진다는 게 정설입니다.
중요한 건, GERD 환자라고 해서 다 LPR이 있는 것도 아니고, LPR 환자라고 해서 속이 쓰리거나 트림이 많은 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4. 왜 치료가 어려운가 — PPI 무용론의 이유
그럼 이렇게 진단이 내려졌을 때, 가장 먼저 받게 되는 치료는 뭘까요? 보통은 PPI, 즉 위산 분비 억제제를 처방받습니다. 넥시움, 파리에트, 오엠프 같은 약이죠.
그런데 문제는 이겁니다. 약을 몇 주씩 먹었는데도, 증상이 별로 안 줄어요. 왜 그럴까요?
- 첫째, LPR의 자극물은 꼭 산성 위산만이 아닙니다. 펩신, 담즙, 위에서 올라오는 가스처럼 산성이 아니어도 후두를 자극할 수 있습니다.
- 둘째, 후두의 민감도는 식도보다 훨씬 높습니다. 같은 역류가 생겨도 식도는 반응하지 않는데, 성대나 인두는 민감하게 기침이나 통증으로 반응하는 거죠.
- 셋째, 미세한 역류에도 자극이 과장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실제로는 역류가 별로 없는데, 후두 점막이 이미 민감해져서 기침을 반복하게 되는 거예요.
5. 한의학적 해석 — 기의 역상, 폐·위·간의 조율 실패
한의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위기불강’, ‘기의 상역’이라고 봅니다. 기운이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데, 울체돼서 위로 치솟는 상태죠. 이때 올라오는 기운은 폐를 자극해서 기침을 유발하고, 성대와 인후의 진액을 말리고, 자율신경계를 각성 상태로 만들면서 수면까지 방해합니다.
특히 야간에 기침이 심하거나, 새벽녘에 목이 마르면서 깨는 경우는 심부 체온 조절과 교감신경 항진의 사인이기도합니다.
또, 이런 상태가 오래되면 간의 울체와 위의 기능 저하, 즉, 간울기체 → 위기허한 → 담습내정이라는 흐름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이는 단순한 위산 역류가 아니라, 신체 전체의 조절 실패에 가까운 상태입니다.
6. 치료는 억제가 아니라 조율이다 — 흐름을 회복시키기
한의학에서는 이럴 때 무조건 기침을 억제하려 하지 않습니다. 기침은 ‘내보내는 반응’이지, ‘문제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죠. 진짜 문제는 위장의 기운이 왜 자꾸 위로 치솟는지, 성대와 인후 점막은 왜 이렇게 예민해졌는지, 왜 자고 있을 때 자꾸 교감신경이 흥분되는지, 그 구조를 회복하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치료는 다음과 같이 설계됩니다:
- 자율신경 조절을 돕는 침치료: 경추부, 흉추, 흉곽 림프 흐름 안정
- 목 주변 열과 담을 해소하는 한약: 사간탕, 가미사역산, 청열화담방 등 변증 맞춤
- 야간 수면 안정과 상체 기울임: 취침 시 쿠션 보조, 식후 2시간 이상 공복 확보
- 기체 완화 스트레칭과 호흡법 병행
7. “예민한 게 아닙니다 — 살아 있는 반응입니다”
PPI도 안 듣고, 기침약도 효과가 없고, 심지어 검사에선 멀쩡하다고 하니 “나만 이상한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예민해서 그런 게 아닙니다. 이건 살아 있는 몸이, 자극을 느끼고 반응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억누르는 약물보다, 그 흐름을 해석하고 조절해주는 치료가 필요할 때입니다. 기침은 멈춰야 할 증상이 아니라, 우리가 이해해야 할 몸의 언어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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