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후유증, 자율신경계가 무너진다
코로나 이후, 내 몸이 달라졌다
"코로나 앓고 난 뒤, 이상하게 숨이 가쁘고,가슴이 두근거리고, 머리가 멍한 상태가 계속됐던 분들 많으셨죠. 검사해도 다 정상이래요. 그런데 몸은 분명히 예전 같지 않죠. 집중이 안 되고, 작은 일에도 쉽게 지치고, 갑자기 식은땀에 손발이 떨리기도 해요. 이건 단순히 컨디션이 나빠진 게 아니라, 우리 몸의 ‘자율신경계’가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어요."
그런데, 이 증상들… 코로나가 처음일까요? 아니에요. 오늘은 코로나19 이후 더 분명히 드러난, 자율신경계 교란의 흐름을 역사와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그 안에는 사실 우리가 그동안 잘 몰랐던, 혹은 외면했던 증상들과 구조가 숨어 있었죠.
1. 예전에도 있었던 자율신경 증상, 왜 몰랐을까?
기립하면 어지럽고, 심장이 빨리 뛰고, 속이 메스껍고 멍한 느낌이 드는 증상. 이건 코로나 이전에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독감, EB바이러스, 장염 바이러스 감염 이후에도 일부 사람들은 비슷한 증상을 겪었죠. 하지만 문제는, 이 증상들이 진단되지 않았다는 거예요.
진료실에서 환자가 말하는 증상은 늘 비슷했어요. ‘몸이 이상한데 검사상으론 멀쩡하다’는 것. 의사도 난처하고, 환자도 억울했죠. 결국 이 증상은 ‘불안’, ‘스트레스’, ‘히스테리’, 혹은 ‘공황장애’로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1993년, 미국 밴더빌트 대학에서 기립성 빈맥 증후군이라는 용어가 처음 정리되면서 이야기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자율신경계의 기능 장애가 특정 패턴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걸, 처음으로 개념화한 계기였어요.
2. 기립성 빈맥 증후군 – 이름 붙여진 ‘증상들’
POTS, Postural Orthostatic Tachycardia Syndrome. 이름은 복잡하지만 핵심은 간단합니다. 누워 있다가 일어났을 때, 10분 안에 심박수가 30회 이상 올라가고, 어지럽고 멍해지는 상태죠. 혈압은 괜찮은데 몸은 아닌 것 같은, 이상한 증상들.
이 증후군이 명명되면서, 자율신경계의 ‘균형 조절 기능’이 무너질 수 있다는 개념이 의학계에 자리잡기 시작했어요. 그런데도 여전히 잘 진단되지 않았습니다. 이름은 생겼지만, 시스템은 준비되지 않았던 거죠.
특히 여성, 젊은 연령층에서 더 많이 나타났기 때문에, 오랫동안 '심리적 문제'라는 낙인이 붙었어요. 실제로는 생리적인 시스템 붕괴였는데도 말이죠.
3. 코로나19, 자율신경계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다
그리고 2020년, 전 세계 수억 명이 감염된 코로나19가 이 판을 뒤집습니다. 그 전까진 이름 없던 증상들이, 한꺼번에, 전 세계에서 보고되기 시작했죠. 호흡기 감염이 끝났는데도, 숨이 가쁘고, 머리가 멍하고, 심장이 자꾸 뛰고, 뭔가 불안하고 피로가 가시지 않는 사람들. 검사를 해도 이상은 없고, 다들 ‘스트레스일 거예요’라는 말만 듣습니다.
그런데 비슷한 사람들을 모아보니, 놀랍게도 패턴이 보였죠. 이건 우연이 아니라, 구조입니다.
이때부터 자율신경계의 교란이 코로나 이후 ‘Long COVID’라는 이름으로 연구되기 시작했고, 자율신경계 질환으로 진단되는 케이스도 급증하게 됩니다. 마침내 이름을 얻은 증상들이, 이제는 구조 속에서 설명되기 시작한 거예요.
4. 이건 코로나에만 있는 걸까?
여기서 중요한 질문. 이런 증상들, 코로나19에만 나타나는 걸까요? 아니에요. 정확히는,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코로나가 그것을 드러내게 한 거예요.
과거에는 감염 후 회복이 조금 길어지거나, 브레인포그처럼 애매한 인지 장애가 생겨도, 주변에서 이해받기 어려웠죠. 그런데 코로나 이후엔 이게 수만 명 단위로 쏟아졌습니다. 의료계도, 사회도 이 문제를 무시할 수 없게 된 겁니다.
결국 코로나는, 자율신경계라는 조용한 시스템에 ‘집단적인 붕괴’라는 확대경을 들이댄 사건이었죠. 우리가 그동안 못 보던 문제를, 보이게 만든 계기였던 겁니다.
5. 어떤 자율신경질환들이 보고되었나?
현재까지 코로나 이후 보고된 자율신경계 질환은 다양합니다. 대표적으로는 기립성 빈맥 증후군(POTS), 부적절한 동성 빈맥(IST), 기립성 저혈압, 신경매개성 실신(NCS), 만성 피로 증후군(ME/CFS), 그리고 가장 흔한 브레인포그까지.
자율신경은 심장, 위장, 혈관, 뇌를 조절하는 시스템이에요. 이 균형이 깨지면, 우리는 숨쉬는 속도도, 체온도, 소화도, 생각의 속도도 흐트러지는 걸 경험합니다. 이것이 바로 ‘무기력한데 설명할 수 없는 상태’, ‘병원에서는 멀쩡한데 몸은 이상한 상태’의 정체입니다. 브레인포그는 그 대표적인 결과입니다. 머리가 멍하고, 단어가 떠오르지 않고, 집중이 안 되고, 피로가 끝도 없이 이어지는 느낌. 이건 인지력의 문제가 아니라, 회복력과 순환, 뇌 기능 자체가 흔들리는 신호예요.
6. 왜 이런 일이 생길까? – 탈억제라는 관점
자율신경 교란의 원인은 단일하지 않아요. 크게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바이러스가 신경계를 직접 공격하거나, 면역 시스템이 자율신경을 실수로 공격하는 경우. 다른 하나는 원래 자율신경이 약했던 사람이 감염을 계기로 무너지는 거예요.
우리가 이걸 ‘탈억제(disinhibition)’라고 표현할 수 있어요.
원래는 잘 조절되고 있던 자율신경계의 균형이, 감염이라는 스트레스로 마지막 버팀목이 무너지면서 무너져버리는 상태. 이 개념은 특히 만성 스트레스 상태나 잠재적 불안장애 병력이 있던 사람들에게서 자주 관찰됩니다.
이때 문제는 감염 자체가 아니라, 그 감염이 어떤 신경 경로에 잔상을 남겼는지, 그리고 회복 시스템이 얼마나 여유를 잃었는지에 달려 있어요. 그래서 사람마다 반응이 다른 거죠.
지금 우리가 보는 건, 아주 오래된 이야기. 그래서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자율신경 실조 증상들. 사실은 코로나가 새롭게 만든 게 아닙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했지만, 진단되지 않았던 것들이에요. 코로나는 그것을 ‘보이게 만든 계기’였고, 이제는 진짜로 마주해야 할 시간이 된 겁니다.
지금 이런 증상을 겪고 있다면, 그건 단순한 피로나 마음 약함의 문제가 아니에요. 당신 몸 속의 균형이 무너졌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건 이해받고, 치료받아야 할, 분명한 생리적 상태입니다.
우리는 이제부터, 이 조용한 시스템 – 자율신경계 – 를 이해하는 새로운 시대를 살아갑니다. 그것은 곧, 우리 몸이 회복과 균형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를 다시 배우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코로나후유증 #인천코로나후유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