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끝났는데… 왜 아직도 열이 나는 걸까?
롱코비드, 그리고 한의학이 말하는 ‘허열’이라는 개념
1. 코로나는 끝났지만, 나는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
진단은 음성인데, 몸은 여전히 이상하다. 체온계에는 37도 언저리. 분명 ‘발열’이라고 할 만큼 높은 건 아니지만, 몸이 달아오르고, 얼굴이 붉어지고, 미세하게 열이 오르는 느낌은 분명하다. 수면도 깊지 않고, 낮에는 쉽게 지치고 피곤하다. 특히 오후 늦게, 더위에 예민해지고 심장 두근거림이나 가슴이 답답한 증상도 느껴진다. 이런 증상들, 단순히 “컨디션이 안 좋다”로 치부할 수 있을까?
2. 롱코비드의 미열, 현대의학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최근 몇 년 간의 연구에 따르면, 코로나 이후에도 일부 환자들에게서는 지속적인 염증 반응이 관찰됩니다. 특히 ‘low-grade inflammation’, 즉 미약한 전신 염증 상태가 유지되며 면역계가 완전히 안정되지 못하고, 뇌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 축(HPA axis)의 부조화가 발생합니다. 이로 인해 체온 조절 이상, 만성 피로, 수면장애, 자율신경기능 이상 같은 증상이 동반되죠. 대표적으로 보고되는 질환군이 바로 ‘롱코비드(Long COVID)’입니다. 하지만 수치로 측정되기 어려운 이 불쾌한 미열의 감각은, 현대의학에서도 아직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3. 한의학에서는 오래 전부터 ‘허열’이라는 말을 써왔다
한의학에서는 이러한 증상을 “열이 있되, 실(實)한 것이 아닌 상태”라고 봅니다. 고전 의가들은 이를 “허열(虛熱)”이라 불렀죠. ‘허(虛)’란 말은 ‘비어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기(精氣), 진액, 혈의 소모로 인해 몸의 균형이 무너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대표적으로 장중경의 『상한론』에서는
“大病之後,虛勞之人,常自汗出,熱不退。”— 큰 병을 앓고 난 뒤 허약한 사람은 항상 땀이 나고, 열이 가시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또한 주단계는 『입문』에서
“虛陽浮越,陰液內損,故身熱而不惡寒。”— 허약한 양기가 위로 치솟고, 음액이 손상되어 열이 있지만 오히려 오한은 없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현대의 롱코비드 환자에게서 흔히 관찰되는, “미열이 있지만 춥지 않고, 오히려 더위를 타며 피로감이 동반되는 상태”와 매우 유사합니다.
4. 열을 내리는 게 아니라, 음을 보하는 것
한의학에서는 이처럼 허열이 나타나는 경우, 강한 해열제나 염증 억제제를 쓰는 대신 “기허생열”, “음허생내열”이라는 병리를 기준으로 체내의 손상된 생리적 균형을 회복하는 방향으로 접근합니다. 예를 들어:
- 생맥산: 기와 음을 함께 보하고, 미열과 자한 증상을 조절
- 자음강화탕: 폐음과 심음을 보하여 체온의 위상 조절
- 가미소요산: 간열과 기체의 결합으로 생기는 열감을 안정
이런 처방은 단순히 “열을 내리는 약”이 아니라, 몸이 왜 열을 내고 있는지를 진단하고 그 원인을 다스리는 방법에 가깝습니다.
5. 침치료와 호흡 중재, 체온 조절의 또 다른 해답
약물 치료 외에도 한의학에서는 침 치료와 호흡 훈련이 자율신경계를 안정시키고, 체온 리듬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봅니다.
- 침 치료: 백회, 풍지, 신문, 내관, 족삼리 등은 자율신경 조절에 관여하며 미열, 피로, 불면을 동반한 롱코비드 증상에 효과적인 조절 포인트로 활용됩니다.
- 호흡 중재: 복식호흡 또는 횡격막 중심의 천천한 숨 들이마시기 – 내쉬기 훈련은 뇌간의 호흡-자율신경 연결을 안정화시키고 체온 조절, 수면의 질, 피로 회복에 기여합니다.
6. 롱코비드 증상이 의심될 때, 단순 체력 문제로 넘기지 마세요
체온이 약간 높고, 이유 없이 피로하고,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느낌… 이 모든 것을 단순한 “기분 탓”, “체력이 약해져서”라고 말하기엔 이미 많은 사례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몸이 보내는 신호를 정확히 이해하고, 그 원인을 구조적으로 분석하여 회복 경로를 설계하는 것입니다. 한의학은 고전 속에 있었던 “허열”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러한 증상군에 대한 설명과 치료 방향을 오래전부터 제시해왔습니다. 미열이 지속된다고 모두 이상한 건 아닙니다. 코로나처럼 몸을 깊이 소모시키는 병 뒤엔, 회복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걸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를 가장 먼저 다루었던 의학이 바로 한의학입니다. 질병 이후에 남은 여진(餘震), 허열, 소모. 이 개념들을 회복의 핵심 키워드로 삼을 수 있다면, 우리는 열을 억제하는 게 아니라, 건강을 회복하는 쪽으로 중심을 옮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