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염, 감염이 아니라 불균형?

안녕하세요 백록담 한의원입니다.

질염, 감염이 아니라 불균형?

질염, 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감염'을 떠올리죠.

세균성 질염, 칸디다 질염, 트리코모나스 질염...

균이 들어와서 증상이 생긴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정작, 검사를 해도 균이 안 나오는 경우도 있고, 치료해도 똑같은 증상이 반복되곤 하죠.

도대체 왜 그럴까요?

오늘은 이 질문에서 시작해서, '질염은 감염이 아니라 불균형'이라는 새로운 시선으로 깊이 들어가 보겠습니다.

감염 중심 패러다임의 탄생과 그 한계

1955년, Gardner와 Dukes는 세균성 질염이라는 진단을 처음 공식화합니다.

질 내의 혐기성 세균이 정상 락토바실러스를 대체하면 비릿한 냄새, 회백색 분비물 등의 증상이 생긴다고 정의했죠.

그리고 그 이후 수십 년간, 질염은 곧 '세균 침입'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납니다.

분명히 증상은 있는데 균이 검출되지 않는 사람들, 또는 반복해서 항생제를 써도 도무지 나아지지 않는 사람들.

더 이상 감염 모델로는 설명이 안 되는 현상들이 점점 늘어나게 된 거죠.

균이 아니라 ‘환경’이 무너졌다는 시선

최근의 연구는 이런 퍼즐을 정반대로 풀기 시작합니다.

세균이 문제라기보다, 질 내 환경이 무너졌다는 겁니다.

정상적인 질 생태계는 락토바실러스라는 유산균이 우세하게 존재하면서 낮은 pH(산성 환경), 젖산, 과산화수소를 만들어 병원균의 침입을 막고 자정작용을 유지합니다.

하지만 스트레스, 생리 주기, 항생제, 성관계, 체내 면역 변화 등으로 락토바실러스가 감소하면?

그 빈자리를 혐기성 세균이 채우고, 염증과 증상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건 감염이라기보단, 마치 생태계의 붕괴에 가까운 그림이죠.

현대의 치료는 '균을 없애는 것'에서 '균형을 회복하는 것'으로

그래서 치료도 달라져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균을 무조건 없애는 항생제나 항진균제 대신, 락토바실러스 보충, 질내 pH 조절, 생태계 회복을 중심으로 한 전략이 부상하고 있죠.

실제로 유럽에선 락토바실러스 백신이 질염의 재발을 낮추고, 심지어 저체중아 출산 위험까지 낮춘다는 임상 결과도 발표된 바 있습니다.

이처럼 패러다임은 '제거'에서 '회복'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한의학은 이 전환을 어떻게 읽는가

한의학에서는 질염을 단일한 균의 침입이 아니라, 기체, 습열, 음허 등의 복합적인 병리 상태로 해석해 왔습니다.

습열하주: 몸 안에 습기와 열이 아래로 몰려 염증이 발생한다.

음허내열: 진액이 마르면서 허열이 올라와 가려움과 작열감이 생긴다.

기허습곤: 기력이 약해지면서 습기가 머물러 분비물이 많아진다.

즉, 외부 병원체가 아니라 내부 환경의 불균형이 먼저라는 개념입니다.

그 점에서 최근의 미생물 생태계 이론과도 놀랍도록 맞아떨어지죠.

질염을 다시 생각한다는 것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이 증상이 단지 ‘세균이 있어서’ 생기는 게 맞을까요?

혹은, ‘왜 세균이 그 안에 자리잡았는가’를 먼저 봐야 할까요?

질염이라는 병은 이제, 감염을 어떻게 없앨 것인가가 아니라 몸이라는 환경이 어떻게 무너졌고, 그걸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의 문제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언저리에서, 한의학의 '균형'이라는 오래된 개념이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되는 것이죠.

Tags

#만성질염 #질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