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이 쓰고, 혀가 화끈거리는 이유? – BMS와 화병, 그리고 한의학의 해석
안녕하세요. 백록담한의원 입니다.
1. 환자가 말하는 첫마디
"선생님, 병원에서는 아무 이상 없대요. 그런데… 혀가 계속 화끈거려요. 그리고 입이 너무 써요."
이건 우리가 진료실에서 자주 듣는 이야기입니다.
검사상 아무 문제가 없고, 염증도 없고, 구강내시경도 이상 없는데 환자는 계속 '입안이 뜨겁고, 쓰고, 이상하다'고 말하죠. 그리고 이런 환자 중 많은 분들이 중년 여성, 특히 폐경기 전후의 시기에 집중돼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갱년기 증상일 수도 있겠다" 싶어서 산부인과를 가보기도 하고, 신경과나 정신건강의학과를 소개받기도 하는데요. 결국 원인을 못 찾고 약만 여러 번 바꿔먹다가 한의원까지 오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질환의 이름이 바로 1차성 구강작열감증후군, 즉 1차성 BMS입니다.
2. BMS란 어떤 병인가요?
BMS는 Burning Mouth Syndrome, 말 그대로 '혀와 입안이 화끈거리는 증후군'입니다. 보통 혀의 앞쪽이나 옆쪽, 혹은 입천장, 입술 안쪽에 뜨겁고 얼얼한 감각이 느껴지고, 같이 쓴맛, 입마름, 무미각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입안엔 보이는 병변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붓지도 않고, 궤양도 없고, 백태도 평범하거나 거의 없습니다. 검사도 다 정상이니까, 증상은 뚜렷한데 진단은 모호한 상태로 남게 되는 거죠. 현재 BMS는 '신경병성 통증의 일종'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즉, 말초나 중추신경계의 통증 감각 시스템이 과민해진 상태로 이해하는 겁니다.
3. 병원에서는 어떤 약을 주나요?
병원에서는 이걸 신경통처럼 보기 때문에 보통 가바펜틴, 프레가발린 같은 항경련제, 또는 심발타, 아미트립틸린 같은 항우울제, 그리고 클로나제팜 같은 항불안제를 처방합니다.
그중에 가장 특이한 건, 혀에 녹여먹는 클로나제팜 설하정입니다. 혀 아래에 놓고 녹이면, 입 안 점막을 통해 흡수되면서 국소 진정 효과를 주는 방식이죠. 초기에는 효과가 있다고 느끼시는 분도 있지만, 중독이나 무기력감, 약에 의존하는 느낌때문에 오래 못 드시기도 해요.
결국 "이 약도 써봤고, 저 약도 써봤는데, 아무것도 소용없어요"라는 상태로 한의원을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4. 그런데, 이거… 홧병 아닐까요?
사실 저는 이런 분들을 볼 때마다 이게 BMS라는 병명 하나로 다 설명되진 않는다고 느낍니다. 왜냐면 환자분들이 보통 이런 식으로 말씀하시거든요.
"가슴이 답답해요."
"자꾸 뭔가 치밀어 올라와요."
"화를 낸 건 아닌데 속이 너무 부글부글해요."
"입이 쓰고, 열이 위로만 올라가는 느낌이에요."
이건 BMS라는 병명이 아니라, ‘병기 흐름’을 말하고 있는 거거든요. 한의학적으로 보면, 이런 흐름은 너무나 전형적인 화병의 구조입니다. 특히 간기울결 → 담열상역 → 구고, 흉민, 불면이라는 병리구조가 그대로 보이는 경우가 많죠.
5. BMS와 화병, 병명은 다르지만 병기는 겹친다
현대의학에서는 BMS와 화병을 완전히 다른 진단체계로 분류합니다. BMS는 ‘신경병성 통증’, 화병은 ‘감정 억압으로 인한 정신신체증후군’. 하지만 실제 환자들은 둘을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증상이 겹쳐집니다.
둘 다 혀가 화끈거리고, 입이 쓰고, 가슴이 답답하고, 잠이 안 오고, 억울한 감정이 해소되지 않고, 신경이 날카롭고, 머리는 멍한데 속은 타들어가는 느낌. 이쯤 되면 병명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의 병기 흐름이 중요한 겁니다.
6. 한의학적으로는 어떻게 해석하나요?
한의학에서는 이걸 크게 4가지 흐름으로 봅니다.
- 담열상역형 → 입이 쓰고, 얼굴이 벌겋고, 화가 많은 느낌. 용담사간탕 계열
- 심화동요형 → 가슴이 두근거리고 잠을 못 자며, 입안이 화끈거림. 황련해독탕 계열
- 음허화왕형 → 오후가 되면 열이 오르고, 입이 마르고, 혀가 붉고 마른 느낌. 지백지황환 계열
- 간기울결형 → 억울하고, 치밀어오르고, 탄식 자주 나옴. 소시호탕, 가미소요산 계열
이 병이 BMS이건 화병이건, 변증을 통해 ‘지금 이 증상이 어디서 올라오고 있는지’를 보는 게 중요합니다.
7. 설명되지 않는 통증, 이제는 흐름을 보자
검사는 정상이지만, 환자는 고통스럽다. 그게 BMS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하지만 단지 ‘신경과민’이라는 말로 환자를 내보내는 건 진료실의 책임 회피라고 생각합니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병명보다 병기, 진단보다 몸의 흐름을 이해하는 해석력입니다. 그것이 한의학이 BMS라는 영역에서 기여할 수 있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8. 실제 환자 케이스 – 진단명이 아닌 맥락이 중요합니다
56세 여성, 구강과 신경과, 정신과까지 진료를 다 보셨는데 "입이 너무 쓰고 화끈거려요, 잠도 잘 안 와요"라고 하셨어요.
심발타, 가바펜틴, 클로나제팜까지 다 써보셨고, 치과에서는 문제가 없다고 했고, 정신과에서는 우울증 약을 줬는데 "먹으면 멍하고 더 입이 마르다"고 하시더라고요.
결국 한방 진료를 받으셨고, 우리가 보기엔 간기울결과 담열상역이 동시에 있는 구조였어요. 소시호탕 기반에 용담사간탕 계열을 일부 변용했고, 감정 표현을 유도하는 심리적 접근까지 병행하면서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9. 해석력과 언어의 전환
BMS는 병명이 아니라, 설명되지 않는 고통을 위한 라벨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의학은 이 라벨 뒤에 숨어 있는 몸의 흐름, 감정의 방향성, 그리고 자율신경의 균형 구조까지 함께 봅니다.
그 차이가, "신경통이네요, 약 드세요"에서 "간담의 열이 위로 올라서 혀가 쓰고 뜨거운 겁니다"라고 말해줄 수 있는 언어와 해석의 전환을 만들어냅니다. 그게 우리가 진료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이고, 한의학이 설명되지 않는 증상들에 접근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