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불안증후군

1. 참을 수 없는 불편함이 다리에서 시작된다

하루가 끝나고, 불을 끄고 누운 순간. 몸은 분명히 쉬고 있지만, 다리가 쉬질 못합니다.

저릿하고 간질간질하고, 안에서 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 뼛속에서 자꾸 뭔가가 기어오르는 느낌에 다리를 움직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움직이면 나아지지만, 움직인다고 완전히 해결되진 않죠. 다시 가만히 있으면, 또 시작됩니다. 이게 반복되면 수면은 무너지고, 낮에도 피곤하고, 다리가 아니라 인생이 피곤해집니다.

2. 병원을 찾아가지만, 돌아오는 말은 “정상입니다”

그래서 병원을 찾아갑니다. 신경과든 정형외과든 가보면 혈액검사, 신경전도검사, 디스크 검사까지 다 해보는데…

“문제 없습니다. 특별한 이상 없네요.” 이런 말을 듣고는, 잠깐은 안심하지만 집에 돌아와 다시 밤이 되면 또 반복됩니다.

“혹시 심리적인 문제 아니에요?” “운동 부족일 수도 있어요.” 결국 환자는 자기 몸이 이상한 건 분명한데, 어디에도 걸리지 않는 상태로 남게 됩니다.

3. 하지불안증후군은 분명히 있다 – 그런데 진단 기준이 좁다

하지불안증후군(RLS)은 전 세계적으로 인정된 질환입니다. 세계수면학회에서도 수면운동장애의 한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고, 국제 하지불안증후군 연구 그룹(IRLSSG)에서는 진단 기준까지 명확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 다리를 움직이고 싶은 강한 충동
  • 휴식 중 악화됨
  • 움직이면 일시적으로 완화
  • 저녁이나 밤에 심해짐
  • 다른 질환으로 설명되지 않음

이 다섯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하면 진단이 가능합니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딱 맞지는 않는다는 거죠.

감각은 확실히 이상한데 ‘움직이고 싶은 충동’은 애매하거나, 밤이 아니라 아침에도 생기거나, 움직인다고 바로 나아지는 건 아니라든지. 그러다 보니 병원에서는 “기준에 안 맞는다”며 진단을 보류하고, 환자는 그 상태로 계속 방치되는 겁니다.

4. 그래서 우리는 치료 반응으로 거꾸로 진단한다 – 역진단의 현실

진단 기준에 딱 맞지 않더라도, 증상이 명확한 환자들은 많습니다. 이때 의료진이 사용하는 방식이 바로 ‘역진단(retrospective diagnosis)’입니다.

예를 들어, 저용량 도파민 작용제를 써봤더니 증상이 현저히 줄어든다. 페리틴 수치를 확인하고 철분 보충을 했더니 감각이 사라진다. → 이 경우엔 “아, 이건 RLS였던 거구나” 하고 뒤늦게 판단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약물 반응에 의존한 후행적 진단이고, 초기부터 명확히 구조를 설명해줄 수 있는 체계가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5. 움직이면 왜 나아질까? — 감각 회로와 운동 회로의 미세한 균형

이 증상이 흥미로운 이유는 바로 ‘움직이면 좋아진다’는 점입니다. 왜 하필 움직임일까요?

신경생리학적으로 보면, RLS는 감각피질(somatosensory cortex)과 운동회로 사이의 자율적 억제 루프가 망가진 상태로 해석됩니다. 가만히 있을 때 감각회로가 비정상적으로 흥분하고, 이걸 억제해줄 도파민 시스템이 제 역할을 못하는 거죠.

그런데 움직이면? 도파민 분비가 일시적으로 촉진되고 감각 자극이 다양하게 들어오면서 뇌는 그 신호들에 일시적으로 ‘과부하’를 걸고 → 결과적으로 감각과민이 누그러지는 겁니다.

즉,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라 뇌가 움직임을 통해 스스로 감각 자극을 재조정하는 구조적 기전이 존재합니다.

6. 그런데 어떤 사람은 수술 이후에 처음 증상이 생긴다

임상에서 자주 듣게 되는 말 중 하나는, “허리 수술 이후부터 다리가 이상해졌어요.” “그 전에는 전혀 없었는데, 수술하고 나서부터 밤에 자려고 누우면 못 견디겠어요.”

이건 신경병증성 이상감각일 수도 있고, 신경 손상 이후의 감각 경로 재조정 과정에서 생긴 중추 감각 민감화(central sensitization)일 수도 있습니다.

척추 수술은 실제로 감각신경의 흐름을 바꿉니다. 그 결과, 중추에서 감각을 억제하던 회로가 불균형을 일으켜 그 전에는 없던 감각 과민이 생길 수도 있는 거죠. 이걸 단순히 “수술 후유증”으로만 치부하기엔 너무 RLS와 비슷한 패턴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7. 이쯤 되면 질문이 생깁니다 — 한의학은 어떻게 보는가?

한의학은 이런 이상 감각들을 어떻게 해석할까요? 우선, 간은 혈을 저장하고 근과 경맥을 주관합니다. 즉, 간혈이 부족하면 하지의 근육과 감각계가 제 기능을 못한다고 봅니다.

또한, 심신이 불안하거나 담화가 위로 치받으면, 밤이 되어서 몸은 쉬려고 하는데 마음과 신경은 계속 깨어 있게 됩니다. 이걸 심신불안(心神不安) 또는 담화로 설명합니다.

그리고 움직이지 않으면 못 견디는 감각은, 한의학에서 말하는 內風(내풍)의 개념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음허 내열이 있거나 간신의 음이 약하면 몸 안에 바람이 일고, 이 바람이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거죠.

8. 일본 한방은 여기에 ‘신경 감작’이라는 개념을 더했다

일본의 캄포의학에서는 이 질환을 신경계의 과민성(감작)이라는 관점으로 설명합니다. 쉽게 말해, 뇌가 평소보다 감각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는 상태.

이런 관점에서 자주 사용하는 처방이 바로 시호가용골모려탕(柴胡加龍骨牡蠣湯)입니다. 스트레스에 의해 HPA 축이 과활성화되고 이로 인해 자율신경이 긴장 상태를 유지하면서 감각 신호가 뇌에 과도하게 증폭되어 전달되는 상태.

여기에 용골과 모려는 신경 진정 작용, 황금과 대조는 열을 내리고 심화를 가라앉히는 작용, 사호와 반하는 간기를 조절하고 담을 흩뜨리는 역할을 합니다. 이외에도 산조인탕, 가미온담탕 같은 처방은 GABA성 억제 시스템의 기능을 유사하게 보완하는 구조로 자주 응용됩니다.

9. 약이 안 듣고, 기준에 안 맞을수록 오히려 한의학이 필요한 때

현실은 그렇습니다. 도파민 약이 듣지 않거나, 먹고 나서 증상이 더 심해졌다는 사람도 많습니다. 페리틴 수치가 정상이지만 이상감각은 여전하다는 사람도 많고요.

진단 기준에 딱 맞지 않는다고 해서 병이 아닌 건 아닙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진단되지 않은 감각의 세계를 설명할 수 있는 한의학의 해석력이 필요합니다.

움직이면 좋아지는 증상, 밤에 심해지고, 감정 기복과 연결되어 있으며, 신체는 멀쩡하지만 신경은 고장난 것 같은 상태. 이런 상황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대신, 한의학은 간·심·신의 상호작용, 풍과 담과 혈의 부조화를 통해 설명을 시도할 수 있는 여지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불안증후군은 단순히 다리가 불편한 질환이 아닙니다. 그것은 감각의 민감성과 감정의 불안정, 수면의 파괴와 운동 충동이 겹쳐진 복합 질환입니다.

진단의 그물망에서 빠져나간 사람들, 약을 먹어도 나아지지 않고, 이유를 몰라 더 불안한 사람들. 그들에게 필요한 건 또 하나의 약이 아니라, 그들의 감각과 고통을 해석해줄 새로운 언어와 해석력입니다. 한의학은 그 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