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불안증후군 철분제 도움이 될까?

1. 밤이 되면 다리에 불이 붙는다 — 하지불안증후군이란?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루 종일 멀쩡했는데, 침대에 눕기만 하면 다리 안에서 뭔가 기어다니는 느낌이 들어요."

또는 "다리를 안 움직이면 못 견딜 것 같아서 계속 비비고 있어야 해요."

하지불안증후군(Restless Legs Syndrome, RLS)은 말 그대로 다리를 가만히 두기 힘든 증후군입니다. 낮에는 비교적 덜하지만, 밤에 심해지는 특성 때문에 수면 장애로도 이어지고,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도파민 관련 문제로 여겨져서 파킨슨 약물을 쓰는 경우도 있고, 철분이 부족해서 그렇다며 철분제를 권유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말 철이 부족한 것일까요?

2. 도파민 회로는 왜 철을 필요로 할까?

도파민은 뇌의 여러 기능—운동, 보상, 감정 조절 등—을 담당하는 주요 신경전달물질입니다. 그런데 이 도파민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철, 그중에서도 Fe²⁺입니다. 도파민 합성의 첫 번째 단계는 티로신이라는 아미노산이 'L-DOPA'로 전환되는 과정인데, 여기에 관여하는 효소가 '티로신 하이드록실레이스(tyrosine hydroxylase)'입니다. 이 효소는 철이 없으면 작동하지 않습니다. 즉, 철이 있어야 도파민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이 반응은 뇌에서도 특히 도파민 뉴런이 몰려 있는 '흑질(substantia nigra)'이라는 부위에서 일어납니다. 이곳은 철이 가장 많이 집중되어 있는 부위 중 하나이며, 도파민 회로의 심장부입니다. 이 철이 줄어들면 회로가 과흥분되거나, 불안정해지면서 하지불안 증상이 생길 수 있습니다.

3. 그런데… 철분제를 먹으면 회로가 회복될까?

많은 의사들이 ferritin 수치가 낮으면 철분제를 처방합니다. 그런데 ferritin은 '저장된 철'의 지표이지, '뇌에서 쓰이는 철'의 상태를 그대로 반영하지는 않습니다. 특히 뇌는 혈액-뇌 장벽(Blood-Brain Barrier)을 통해 외부 물질의 유입을 철저히 통제합니다. 철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뇌로 철을 들여보내기 위해서는 transferrin, DMT1, ferritin 등 다양한 수송체들이 정교하게 작동해야 하고, 이 과정 중 하나라도 무너지면 철이 뇌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혈중 철이 충분해도 뇌 안은 철 부족 상태일 수 있고, 이게 바로 하지불안의 병리적 배경입니다.

4. 정교한 철 대사 시스템 vs 단순한 철분제 처방

철 대사는 위에서 흡수되어 간과 뇌로 저장·운반·사용되는 전체 과정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밀하게 조절되는 시스템입니다. DMT1, hepcidin, ferritin, ferroportin 등 수많은 조절자들이 작동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처방은 어떨까요? 보통은 ferritin 수치 하나만 보고 "철분이 부족하네요, 철분제 드세요" 하고 끝입니다. 이건 철 대사의 구조적 정교함에 비해 지나치게 무딘 개입이며, 실제로 많은 경우에서 효과가 없거나 부작용만 남깁니다. 또한 철은 과잉 상태에서는 산화스트레스의 원인이 됩니다. Fe²⁺는 과산화수소와 반응해 매우 강력한 활성산소(·OH)를 만들 수 있고, 이게 세포를 손상시킵니다. 즉, 철은 꼭 필요한 금속이지만, 반드시 조절되어야 하는 금속이기도 합니다.

5. 그럼에도 왜 철분제가 ‘효과 있는 것처럼’ 보일까?

간혹 철분제를 복용하고 RLS 증상이 나아졌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일까요? 실제로 ferritin 수치가 50 ng/mL 이하로 매우 낮은 경우에는 철분 보충을 통해 도파민 회로가 일정 부분 안정되는 효과가 나타납니다. 그러나 문제는, 대부분의 환자들이 이 기준을 만족하지 않거나, ferritin이 정상인데도 증상을 겪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들에게 철분제는 별다른 효과를 주지 않거나, 복통, 변비, 흡수 불량 등의 부작용만 남깁니다. 즉, 철분제는 일부에게만 의미가 있으며, 대부분의 하지불안 환자에게는 '표적이 빗나간 치료'일 수 있습니다.

6. 한의학은 이 간극을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

한의학은 철이라는 물질을 직접 다루지 않지만, 그 철이 작동하는 환경—즉 '내부 조건'을 조율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접근합니다. 철이 흡수되고, 저장되고, 뇌로 전달되어 작동하려면 비위는 철의 흡수를 도와야 하고, 간은 철을 저장하고 재분배하며, 심은 감각 회로와 수면 리듬을 조절하고, 신은 뇌로 철이 도달할 수 있는 상행 통로를 만들어야 합니다. 한의학은 이 네 가지 축(간·심·비·신)의 불균형을 변증해 비기허엔 향사육군자탕, 간기울결엔 가미소요산, 심혈허엔 귀비탕, 신정부족엔 자음강화탕 등으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즉, 철을 넣는 것이 아니라, 철이 '쓰일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접근입니다.

7. 철을 넣는 게 아니라, 작동 환경을 회복하자

하지불안증후군은 철이 없어서 생기는 병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철이 있어도 제대로 쓰이지 않아서 생기는 병입니다. 그래서 철분제를 무작정 복용하는 건 기능을 모르는 채 연료를 들이붓는 격이며, 효과보다 부작용이 더 클 수 있습니다. 이제는 철을 넣는 것이 아니라, 철이 작동할 수 있도록 '조율'하는 방향으로 치료가 바뀌어야 합니다. 한의학은 바로 이 정교한 균형을 회복하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철을 다시 잘 쓰는 몸, 회로가 리듬을 되찾는 몸. 그게 바로 하지불안증후군 회복의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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