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민성대장증후군 잘 치료가 안되는 이유?

안녕하세요 백록담한의원 입니다.

약은 먹어도, 장은 그대로?― 과민성대장증후군에 대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

진료실에 오신 분들 중엔 이런 얘기를 하시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병원에서 과민성대장증후군이라고 하더라고요. 약도 먹어봤는데... 잘 모르겠어요. 차라리 안 먹을까 싶기도 해요.”

보통 이런 얘기엔 두 가지 감정이 섞여 있습니다.

  • 하나는 여전히 반복되는 복통, 불규칙한 배변, 잦은 설사나 변비에 대한 답답함이고,
  • 또 하나는 약을 계속 먹는 것에 대한 막연한 불신입니다.

그런데요, 이런 말이 사실 그렇게 이상한 건 아닙니다. 과민성대장증후군은 원래 약물 반응이 뚜렷하지 않은 질환이에요.

왜냐면 장 자체의 구조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장의 움직임을 조절하는 ‘신경과 리듬’이 망가진 상태이기 때문이죠.

장이 아니라, 장을 둘러싼 시스템의 문제

과민성대장증후군을 단순히 장의 문제로 보지 않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배가 아프고, 설사를 하고, 변을 시원하게 못 보고… 이런 증상들이 반복되지만, 정작 장 내시경을 해보면 아무 이상이 없거든요.

그러니까 구조가 망가진 게 아니라, 조절하는 시스템이 탈이 난 겁니다.

그 조절 시스템이 뭔가요?

바로 자율신경계, 그리고 뇌와 장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바로 장이 반응하는 이유, 아침에 눈만 떠도 변의가 밀려오는 이유, 불안하면 배가 아픈 이유… 이런 상태를 한의학에서는 ‘비위의 조화가 깨졌다’거나, ‘간기범위’, ‘기체’ 같은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특히 간(肝)이라는 기관은 단순한 해독의 장기가 아니라, 긴장을 풀어주고 기혈의 흐름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죠.

간이 경직되고, 비위가 약해지면 장은 스스로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약 한 알로는 해결이 안 되는 게 당연하죠.

왜 약만으로는 부족한가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이겁니다. 약은 보통 증상을 억제하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설사를 줄이는 약, 가스를 줄이는 약, 장을 이완시키는 약.

하지만 문제는 ‘왜 그게 반복되느냐’에 대한 해답을 주지 않아요. 게다가 이런 약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먹으면 속이 더 불편해지거나, 오히려 장이 멈춰버리는 느낌을 받는 경우도 있고요.

이런 경우에는 약의 작용보다는 몸의 감수성, 즉 신경계의 긴장 상태 자체를 다뤄야 합니다.

회복은 장이 아니라, 나 전체로부터 온다

실제로 침 치료를 하거나, 장을 다스리는 한약을 쓰다 보면 배만 편해지는 게 아니라, 불안감이 줄고 잠도 잘 오고, 소화력 전반이 안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반복적인 설사와 변비를 오가는 분들에게는 ‘리듬’ 자체가 치료의 핵심이에요.

한약으로 장점막의 민감성을 줄이고, 침 치료로 자율신경계의 균형을 잡고, 식습관과 일상의 패턴까지 함께 조율해 나가면—그제야 몸은 비로소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리듬을 회복하게 됩니다.

증상이 아니라 조절력을 치료하는 것

과민성대장증후군이라는 이름은 사실 병명을 부여한 것 같지만, 그 본질은 ‘내 몸의 조절 능력’이 무너진 상태입니다. 한의학은 이 조절 능력을 다시 길러주는 의학입니다.

장만 보는 게 아니라, 나를 보는 치료. 그게 이 질환에 필요한 접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