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명은 중심 없이 시작되지 않는다 — 중토의 생성론

생명은 정적인 구조물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회전체다. 하나에서 둘로의 분화는 에너지의 대칭을 깨뜨리고, 그 순간 회전이 발생한다. 이 회전이 만들어내는 기하학적 안정점, 그것이 바로 '중심'이며, 한의학에서는 이를 중토(中土)라 부른다. 중토는 미리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변화 속에서 생겨나는 균형의 발생점이다.

이 개념은 생장수장(生長收藏)의 주기적 반복 속에 드러난다. 변화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중심이 있어야 하고, 그 중심은 정지된 좌표가 아니라 균형을 유지하려는 운동의 축이다. 생명은 이 축 위에 '자율성'을 얻으며, 동적 평형 상태를 구성한다.

현대 생물물리학자 Mae-Wan Ho는 생명을 단지 생화학적 반응의 총합으로 보지 않고, 리듬과 진동을 유지하는 동적 시스템으로 정의했다. 그녀가 제시한 homeodynamics는 기존의 고정된 set-point 개념인 homeostasis와 달리, 생명은 끊임없는 진동과 조정 속에서 평형을 이룬다고 본다. 즉, 변화 속에서 균형을 스스로 조절해내는 힘이 생명이라는 개념은 한의학의 중토 사상과 맞닿아 있다.

2. 치료는 균형의 회복이지, 조작이 아니다

질병을 정지된 병소로 보는 전통적 의학적 시각과 달리, 나는 질병을 루프가 엇나간 움직임이라고 본다. 치료란 이 어긋난 루프를 외부의 힘으로 억지로 돌려놓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스스로 조정할 수 있도록 조건을 재구성하는 행위다.

이를 나는 "흔들림을 통한 자율 회복의 유도"라고 부른다. 마치 통 속에 섞인 땅콩과 돌들이 일정한 진동을 받으면 무게 중심에 따라 자연스럽게 재배열되는 것처럼, 치료란 그 자체가 생리적 회귀의 조건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 개념은 신경생리학에서 resonant entrainment 또는 phase resetting으로 설명된다. 이는 생체 리듬이 외부 자극에 의해 일정한 파형으로 재조정되는 현상으로, 생명 유지의 조건이 단지 내부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조율된다는 뜻이다.

특히 Stephen Porges는 Polyvagal Theory를 통해 자율신경계가 단순히 교감/부교감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안전감(social engagement)을 감지하는 복잡한 체계임을 설명한다. 안전감이 회복되면 자율신경계는 방어모드에서 조절모드로 전환되고, 이것이 바로 루프 회복의 출발점이 된다는 것이다.

3. 흔들림은 자극이 아니라 진입이다 — 루프에의 접근

흔들림은 단순한 자극이 아니다. 그것은 루프가 정지된 구조에 조용히 들어가, 내부에서부터 리듬을 만들어내는 행위다. 침, 뜸, 한약, 수기, 한열자극, 음향자극, 시선과 말—all of these.

이들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루프에 진입해 구조적 해상(resolution)을 유도하는 중재다.

예를 들어, 외상 이후 발생하는 심박변이도(HRV)의 저하는 자율신경계가 경직된 상태임을 의미한다. Peter Levine의 Somatic Experiencing 이론에 따르면, 이러한 상태는 말이 아니라 신체 기반 감각 자극—즉, 피부 자극, 위치 감각, 호흡 리듬 등의 방법으로 루프에 진입해야 회복이 가능하다고 본다. 치료자는 강도가 아니라, 어디로 진입하느냐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4. 병은 결핍이 아니라 막힘이다 — 병리의 위상 조정

기능의학은 때때로 질환을 특정 미량 영양소나 유전자의 결핍으로 축소한다. 그러나 실제 병태는 여러 생리적 루프가 얽혀 막히거나 비틀어진 결과다. 이때 체내에 남는 담, 습, 어혈, 열 등의 병리적 물질은 단순 부산물이 아니라, 막힌 루프의 잔재다.

Bruce Lipton은 세포 수준에서의 변화가 유전자가 아니라 환경과 신호 전달 루프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한다. 그의 개념인 epigenetic scar는 한 번 형성된 스트레스 반응 루프가 이후 유전자 발현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뜻이다.

또, 면역학자 Ruslan Medzhitov는 inflammatory memory라는 개념을 통해, 염증 반응도 과거 자극에 의해 경로화되어 반복될 수 있음을 밝혔다. 이런 맥락에서 치료는 단지 병리 물질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잔재를 만들어낸 루프를 해체하고, 재조율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5. 나는 이것을 '컨디셔닝'이라 부른다

치료는 고치는 것이 아니라, 회복 가능한 조건을 다시 만들어주는 일이다. 이 조건은 생리적 리듬, 감각 입력, 온도, 공기, 호흡, 사회적 맥락 등 다양한 요소로 구성된다. 이 조건들을 회복시키는 것을 나는 컨디셔닝이라 부른다.

이는 심리학자 Kurt Lewin의 장이론(field theory)과 연결된다. 인간은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고, 항상 ‘장이 허용하는 방식’으로 반응한다. 즉, 질병 역시 특정한 장(field) 속에서 유지되고, 치료는 그 장을 재조정하여 회복 가능성을 열어주는 일이다.

6. 디테일은 필요하되, 환원은 경계한다

현대 기능의학은 종종 정밀한 분석을 통해 유전, 장내세균, 대사 경로의 특정 포인트를 찾아낸다. 하지만 이러한 디테일이 오히려 환자의 전체 구조를 놓치게 만들 수도 있다.

Gerald Edelman은 뇌와 면역계를 예로 들어, 같은 결과에 도달하는 경로가 여럿 존재한다는 degeneracy 이론을 제시했다. 이는 "어떤 성분이 부족해서 병이 생겼다"는 단순 원인론보다, 다양한 경로가 얽히고설켜 발생하는 루프 구조를 이해하는 쪽이 더 생물학적으로 설득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치료자는 단선적인 보충이나 억제가 아니라, 다원적 회복 경로의 구성자여야 한다.

7. 회복은 하나의 방향이 아니라, 다층적 조정이다

회복은 한 가지 자극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결과가 아니다. 자세의 긴장, 호흡의 리듬, 장내 미생물, 자율신경의 상태, 정서적 안전감—all of these. 각각은 독립된 경로가 아니라, 동시에 작동하는 생리적 루프들이다.

신경과학자 Antonio Damasio는 감정이 단지 뇌의 반응이 아니라 신체 기반 감각 상태(somatic marker)라고 설명했다. 우리의 판단과 회복은 이 감각 루프들이 통합된 신호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회복은 인지-정서-감각-자율신경이 통합적으로 재조율될 때 일어난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다층적 진입(multimodal entry)의 개념이며, 치료자는 이 다양한 진입점을 감지하고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자극 이전에 리듬을 보고, 감각 이전에 구조를 이해하고, 무엇보다 기다릴 줄 아는 사람, 그것이 치료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