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성 소화불량과 담적병 – 정상이라는 말이 고통을 지우진 않는다

위장이 아픈데, 아무 이상이 없다고요? 당신은 반복되는 속쓰림과 더부룩함, 가슴의 압박감, 그리고 간헐적인 두통, 어지럼증, 심지어 불면이나 우울감까지 느낍니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면, 위내시경도 깨끗하고, 헬리코박터균도 없고, 위산 농도도 정상이래요. 그런데 몸은 매일이 불편합니다. “식사 시간이 스트레스예요.” “늘 체한 느낌인데, 병명은 없다네요.” 이런 경험은 기능성 소화불량(Functional Dyspepsia)라는 말로 포장됩니다. 하지만 그 ‘기능성’이라는 말이 환자에게 주는 의미는 치료 가능성보다도 이 고통을 설명해줄 수 있는 언어가 없다는 절망일 때가 많습니다.

기능성 소화불량 – 이름은 있지만 설명력은 부족한 병

기능성 소화불량은 해부학적으로, 병리학적으로, 뚜렷한 병변이 없습니다. 그래서 Rome Criteria라는 국제기준에서 진단됩니다. Rome IV 기준에 따르면, 기능성 소화불량은 다음과 같은 증상군으로 정의됩니다:

  • 식후 만복감 (postprandial fullness)
  • 조기 포만감 (early satiety)
  • 명치 통증 (epigastric pain)
  • 명치 작열감 (epigastric burning)

이 중 하나 이상이 3개월 이상 반복되며, 기질적 이상 소견이 없을 때 ‘기능성’이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하지만 이 병은 이름만 붙었을 뿐, 치료는 여전히 불확실합니다. 위산억제제, 위장운동 촉진제, SSRI, 저용량 삼환계 항우울제(TCA)… 이론적으로는 도움이 된다고 하지만, 실제 진료 현장에서는 “먹어도 똑같아요”라는 환자의 말이 너무 익숙합니다. 왜일까요? 이 병은 단지 위장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몸 전체를 감싸는 신경생리학적 리듬의 붕괴이기 때문입니다.

환자는 “이상하다”고 말한다

의학은 명확한 증상을 선호합니다. “배가 아프다”, “속이 쓰리다”, “구토가 난다”처럼요. 그런데 기능성 소화불량 환자들은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속이 뭔가 계속 안 좋고, 기운이 빠지고, 명치부터 위쪽이 답답해요.” “어떤 날은 머리가 뿌얘지고, 어떤 날은 이유 없이 기분이 가라앉아요.” “자는 동안에도 소화가 안 되는 느낌이에요.” 이건 단일 증상이 아니라, 리듬이 흔들릴 때 생기는 다중 증상입니다. 이는 위장과 중추신경계, 자율신경계가 서로 연결된 장-뇌 축(Gut-Brain Axis)의 대표적인 현상입니다.

‘의사 중심의 개념적 구획’이라는 말의 의미

기능성이라는 진단은 병을 분류하는 의사의 언어입니다. 이는 프랑스 철학자 조르주 캉길렘(Georges Canguilhem)의 말처럼, “정상은 통계가 아니라 생명의 의미에서 나와야 한다”는 주장과도 맞닿습니다. 즉, ‘병이 아니다’라는 말이 환자에게는 고통의 무시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 의사가 쥐고 있는 정상/비정상의 잣대는 환자의 고통을 담아내기에는 너무 정형화되어 있고, 그 구획은 결국 ‘기능성’이라는 말을 만들어냈습니다. 증명되지 않지만 실재하는 고통, 그건 결국 병명이 아니라 감각과 삶의 구조가 무너졌다는 신호입니다.

담적병 – 병명이 아니라 환자의 서사다

그래서 어떤 환자들은, 기능성이라는 말보다 ‘담적’이라는 말에서 더 큰 위안을 받습니다. 담적은 단어 그대로 해석하면 ‘담(痰)이 쌓인 병’입니다. 하지만 현대 한의학에서는 그것을 더 넓게, 자율신경계 교란 + 위장기능 저하 + 전신 불균형의 복합 신호로 인식합니다. 환자들이 말하는 담적은 단순한 위의 덩어리가 아니라, 신경이 날카롭고, 자율신경이 흔들리고, 위장이 늘 약하며, 감정도 같이 무너지는 상태를 뜻합니다. 이는 비위허한, 간기울결, 담울내결 같은 한의학적 개념으로 표현되며, 서양의학적으로는 교감신경 우세, vagal tone 저하, HPA축 기능 이상으로 설명될 수 있죠.

흐름의 병, 흐름으로 다뤄야 한다

인간의 소화는 진화적으로 매우 특이한 과정입니다. 불을 통한 조리를 시작한 이후, 우리는 외부에서 에너지를 미리 분해하고, 내장기관의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해왔습니다. 하지만 현대인의 생활은 그 흐름과 정반대입니다. 빠른 식사, 정적인 자세, 장시간 앉아있기, 높은 스트레스, 얕은 호흡, 부족한 수면, 낮은 심박변이도… 이 모든 것이 위장에 영향을 주고, 결국 기능적 위장장애 또는 담적과 같은 전체적 리듬의 붕괴로 이어집니다. 약만으로 치료되지 않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이건 구조의 병이 아니라 흐름의 병이기 때문입니다.

그 흐름은 기, 혈, 호흡, 감정, 움직임, 소화까지 모두 포함된 ‘삶의 리듬’이죠. 기능성 소화불량은 단순히 위산이 많아서 생기는 병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위산억제제나 운동촉진제 같은 단선적인 약물 처방에는 반응이 제한적입니다. 약을 복용해도 한시적이거나 부분적인 호전만 있을 뿐, 대부분의 환자들은 “약을 먹어도 몸이 계속 예민하다”, “한 증상이 나아지면 다른 데가 아프다” 이런 말을 반복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명확합니다.

이 질환은 소화기관이라는 ‘기계 한 부위’가 고장 난 것이 아니라, 몸 전체의 자율신경계, 감각 회로, 감정의 진폭, 수면, 자세, 호흡, 식사 속도, 심지어는 인간관계에 이르기까지 삶 전체의 리듬이 흐트러져 나타나는 종합적인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미주신경(vagus nerve)은 위장의 운동성을 조절하면서 동시에 심박수와 감정 조절, 면역 반응까지 연결돼 있습니다. 또한 횡격막의 움직임은 위의 위치와 긴장을 조절할 뿐 아니라, 숨의 깊이에 따라 교감-부교감의 균형도 바꿉니다. 그런데 현대인의 식사 환경은 이 리듬을 거의 방해하는 방향으로만 작동합니다. 앉은 자세에서 급하게 음식을 삼키고 얕은 호흡 속에서 소화기를 눌러가며 스마트폰이나 화면을 보며 주의는 분산되고 식사 후 곧장 앉은 채로 장시간 일하거나 운전을 합니다. 이런 일상은 소화라는 과정이 요구하는 생리적 협업을 거의 무시한 채, 각 장기의 부담만 높이는 방향으로 반복됩니다. 결국 기능성 소화불량은 장기 고장이 아니라, 삶의 조율 실패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진짜 치료는 단순한 ‘제산제 복용’이 아니라 몸의 리듬을 복원하고, 자율신경계를 안정시키며, 내장기관의 움직임과 협응을 회복시키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때 중요한 건 장기 그 자체보다, 장기 사이의 흐름 — 즉 연결성을 다루는 시각입니다. 한의학에서는 이를 ‘기(氣)의 흐름’, ‘간비불화’, ‘담울내결’ 같은 개념으로 풀어냅니다. 현대 생리학에서는 ‘autonomic dysregulation’, ‘vagal tone recovery’, ‘visceral motility’ 같은 표현을 쓰지요. 표현은 달라도 핵심은 같습니다. 하나의 원인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전체 흐름을 복원하는 것. 그 흐름이 바로, 우리가 놓쳐왔던 ‘몸의 대사적 리듬’이며, 기능성 소화불량과 담적병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시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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