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지면서 쓰러졌다면? – 미주신경성 실신의 신호를 읽는 법

안녕하세요. 백록담한의원 입니다.

1.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고, 쓰러졌습니다

출근길 지하철. 앞사람이 비틀거리다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습니다.

누군가는 실신, 어떤 이는 저혈압, 또 어떤 이는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당사자에게는 이 한 번의 쓰러짐이 단순하지 않습니다.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보다 더 무서운 건 ‘다시 그러면 어쩌지?’ 하는 불안입니다.

이 증상의 이름은 미주신경성 실신.

생명에는 큰 위협이 없지만, 일상에는 커다란 불편을 남깁니다.

2. 브레이크가 갑자기 작동하는 이유

몸이 실신을 선택하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살기 위한 방어입니다.

긴장하거나 통증을 느끼면 교감신경이 올라갑니다.

심박수는 빨라지고, 혈압도 오릅니다.

그런데 이 상태가 극단에 이르면 몸은 자율적으로 미주신경을 통해 브레이크를 밟습니다.

심박수는 급격히 떨어지고, 혈관은 확장되며, 결국 뇌로 가는 혈류가 줄어들고 의식을 잃게 되는 거죠.

이건 마치 액셀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은 차가 급정거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3. 단순한 실신일까, 자율신경실조일까

실신은 말 그대로 갑자기 의식을 잃는 사건입니다.

그런데 똑같이 어지럽고, 두근거리고, 식은땀이 나는 사람들이 실신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비슷한 증상을 반복적으로 겪습니다.

이럴 땐 자율신경실조증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죠.

다만 중요한 건, 미주신경성 실신은 비교적 명확한 트리거가 있고, 자율신경실조는 지속적이고 만성적인 불균형이라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시험장에서 쓰러진 학생은 미주신경성 실신이고, 늘 어지럽고 피곤하고 식사 후 졸리는 사람은 자율신경실조에 가깝습니다.

4. 환자의 삶에서 실신이 갖는 의미

단 한 번의 실신이어도 환자에게는 굉장한 충격이 됩니다.

자기도 모르게 넘어진다는 건, 몸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게 반복되면 ‘언제 또 쓰러질까?’ 하는 불안이 더해집니다.

누워 있을 때보다 서 있을 때, 외출 중일 때 더 불안하고 이제는 나가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기도 하죠.

5. 서양의학적 치료 – 조절 중심의 전략

양방에서는 대개 행동 요법을 권장합니다.

자세 변화에 주의하고, 충분한 수분을 섭취하며, 증상이 올 것 같으면 미리 누워 휴식하라는 식입니다.

심한 경우 약물치료가 병행되기도 하지만 기저 질환이 없는 이상 대부분은 “크게 이상은 없습니다”라는 답을 듣게 됩니다.

결국 환자는 스스로 조절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6. 한의학에서 본 실신 – 궐증(厥證)의 관점

한의학에서는 이와 유사한 증상을 오래전부터 궐증이라고 불렀습니다.

‘기운이 거꾸로 올라가고 빠져나간다’는 뜻인데요, 정신을 잃고, 사지가 차가우며, 맥이 약해지는 전형적인 궐증의 모습은 미주신경성 실신과 매우 닮아있습니다.

특히 기궐, 심기허탈, 심기역동과 같은 병기들은 교감-부교감 시스템의 급격한 전환을 설명하는 데도 잘 들어맞습니다.

7. 침과 한약, 회복을 중심으로

한의학은 이 증상을 단지 "막는다"기보다는 재발을 줄이고 몸의 균형을 되찾게 하는 데 초점을 둡니다.

예를 들어 침 치료는 심포경, 임맥, 독맥 경혈을 중심으로 자율신경계를 안정화시키고 순환을 돕습니다.

대표적인 혈자리로는 백회, 내관, 족삼리, 태충 등이 있습니다.

한약은 심기허, 기혈양허, 심비양허 같은 변증에 따라 생맥산, 보중익기탕, 귀비탕 등이 활용됩니다.

이 모든 처방은 “깨어 있게 만드는” 게 아니라 안정적으로 깨어 있도록 돕는 방식입니다.

8. 체질과 삶의 리듬을 함께 조율하기

실신은 몸이 보내는 경고입니다.

내가 지금 너무 벼랑 끝에 있다는 사인이기도 하죠.

실제로는 수면 부족, 수분 부족, 스트레스 누적, 불규칙한 생활이 모든 게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한방 치료는 단지 한 번의 실신을 막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왜 그 경계선까지 밀려갔는지를 되짚고 그 체질에 맞는 회복 경로를 설계하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실신은 무서운 경험일 수 있지만, 그 자체가 질병이라기보단 경고등입니다.

그 경고를 무시하지 않고 어떻게 해석하고 대응할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한의학이 그 해석의 폭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건 단순한 치료 이상의 가치가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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