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 진단 이후, 약물치료를 고민하는 부모님이라면
“이건 병일까, 혹은 설명일까”
1. 진단 앞에서 흔들리는 마음
아이를 키우다 보면 누구나 “혹시 우리 아이, ADHD일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산만해 보이고, 충동적으로 말하고 행동하고, 집중을 잘 못 한다는 말을 듣게 되면 부모로서 가장 먼저 드는 감정은 불안이죠.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고, 의사에게서 진단서를 받는 순간, 그 감정은 걱정과 혼란으로 바뀝니다.
“이제 우리 아이는 평범하지 않은 걸까?” “약을 먹여야 하는 걸까?” “정말 이게 필요한 걸까?”
하지만요, 우리가 ADHD라는 말을 받아들일 때 정말로 필요한 건 진단서보다 먼저, 그 진단이 만들어진 역사와 철학을 아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2. ADHD는 언제부터 병이 되었을까?
사람이 집중을 못 하는 일은 예전에도 있었습니다. 1798년, 영국의 의사 알렉산더 크릭톤은 산만하고, 하나의 생각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기술합니다. 그는 이걸 병이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그저 하나의 기질, 즉 사람의 ‘성격적 특징’으로 받아들였던 겁니다.
1902년, 조지 프레더릭 스틸이라는 소아과 의사가 “정상 지능을 가졌지만, 도덕적 통제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비로소 지금 우리가 ADHD라 부르는 증상들이 병의 언어로 등장하기 시작하죠. 하지만 결정적인 변화는 1937년에 벌어졌습니다. 미국의 의사 찰스 브래들리는 아이들의 두통 치료를 위해 벤제드린, 즉 암페타민을 사용했는데 놀랍게도 아이들이 조용해지고 집중력이 좋아졌다는 결과가 나타납니다.
즉, 약물이 먼저 효과를 보였고, 그 뒤에 “이 약이 듣는 병이 뭔가 있겠구나”라는 방식으로 ADHD라는 병이 ‘정의’된 것입니다. 이건 중요한 전환이에요.
“약이 먼저 만들어지고, 그 약에 맞는 질병이 뒤늦게 발명된 것 아닌가?”
실제로 ADHD라는 진단명은 1980년대가 되어서야 정신질환 진단 매뉴얼(DSM)에 본격적으로 등장합니다. 주의력결핍(ADD)과 과잉행동(H) 증상을 하나로 묶어 ADHD라는 이름이 된 건 1987년 이후죠.
3. 질병인가, 규범의 문제인가?
이 지점에서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의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푸코는 의료라는 것은 단지 병을 고치는 게 아니라, 사회의 규범에 어긋난 행동을 ‘질병’으로 명명하는 권력 작용이라고 했어요. ADHD라는 진단이 생긴 시점은 아이들이 점점 더 긴 시간 학교에 앉아 있어야 했고, 산업사회에서 시간과 규율, 집중과 효율이 인간의 가치 기준이 되었을 때입니다.
그렇다면 ADHD는 신경학적 질환이기도 하지만, 사회가 정한 ‘정상성’에 들어맞지 않는 아이들을 분류하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이건 병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기대와 아이의 기질 사이에서 생긴 간극일 수 있어요.
4. 약물은 치료일까, 조율일까
의사들은 ADHD에 대해 약물치료를 권하기도 합니다. 메틸페니데이트, 아토목세틴 같은 약을 통해 아이의 행동이 조용해지고, 집중이 잘 된다는 보고도 많죠. 하지만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건 이겁니다. 이 약은 정말 ‘회복’을 돕는 걸까요? 아니면 ‘순응’을 유도하는 걸까요?
대부분의 약물은 도파민 회로의 작동을 억제하거나 보정하는 방식입니다. 즉, 아이의 뇌 발달 자체를 이끄는 게 아니라 그날 하루, 교실 안에서 조용히 앉아 있게 만드는 도구일 수 있다는 거죠. 어쩌면 이건 염증을 없애는 약이 아니라, 통증을 잠시 잊게 해주는 진통제에 더 가까운 것일지도 모릅니다. 아이의 발달을 지연시키지는 않더라도, 아이 자신이 내면적으로 성장할 기회를 놓치게 만들 수는 있습니다.
5. 중요한 건 태도입니다 — 그리고 그 태도가 아이의 방향을 바꿉니다
ADHD를 진단받았다는 건 아이에게 뭔가 "고장"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이 아이는 세상과 다른 방식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신호예요.
그 신호를 해석하고, 거기에 어떻게 반응할지를 결정하는 건 바로 부모의 역할입니다. 약물은 경우에 따라 아이에게 일상의 편안함을 줄 수 있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한의학에서는 이런 아이들의 상태를 단지 "조절의 실패"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이 몸속의 생리 리듬이 비틀리고, 감정과 움직임의 흐름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상태로 이해하죠.
그래서 한의학적 접근은 무조건 행동을 억제하기보다는 정신과 감정의 안정, 기혈순환의 조화, 뇌와 몸 전체 리듬의 회복을 도와서 아이의 내면에서부터 발달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하려는 치료입니다.
예를 들어, 한약은 신경계 흥분을 무조건 누르기보다는, 신경조직의 자가 회복력을 지지하거나 감각 과민성으로 인한 탈진 패턴을 조절하는 데 쓰이기도 하고요, 침치료는 아이가 자각하지 못했던 신체 감각과 정서의 연결을 되살리는 자극이 되기도 해요.
이건 약물처럼 "즉각적인 변화"는 아닐 수 있지만, 자연스러운 성장 경로를 방해받지 않도록 환경을 정돈해주는 치료라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바로 이 점이, ADHD를 가진 아이에게 가장 결핍되기 쉬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정상'이라는 말보다 먼저 떠올려야 할 것
우리는 모두 사회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학교도 가야 하고, 친구도 만나야 하죠. 그래서 때때로 조절이 필요하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균형도 요구됩니다. 하지만 그 균형이 아이의 가능성과 자율성을 억누르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한의학적 치료는 그 아이가 타고난 기질을 지우는 게 아니라, 그 기질이 삶을 향해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길을 열어주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ADHD라는 이름은 병일 수도 있고, 단지 우리가 이해하려는 틀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부모가 그 이름보다 아이 자체를 더 오래, 더 깊이 바라본다면 그게 아이에게는 약보다 더 근본적인 회복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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