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제로 해결되지 않는 생리통, 정말 '자궁만의 문제'일까요?
제가 진료실에서 뵙는 많은 30대 여성분들 중에는,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생리 기간이 그야말로 '고통의 시간'인 분들이 많습니다.
배를 칼로 쑤시는 것 같아요. 아랫배에 돌덩이가 박힌 듯 무겁고 아파요. 진통제를 먹어도 소용이 없어요. 허리까지 끊어질 듯 아프고, 두통에 오심까지 동반되어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예요. |
문득 이런 질문을 던져봅니다. 진통제로 해결되지 않는 심한 생리통은 왜 생기는 걸까요?
단순히 자궁만의 문제라고 치부하고 진통제에만 의존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해결책일까요?
저는 임상에서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환자분들의 몸에서, 그리고 그분들의 삶의 맥락에서 찾곤 합니다.
생리통, 몸이 보내는 '경고등'
제 경험상, 진통제조차 듣지 않는 생리통은 자궁이라는 특정 부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오히려 몸 전체의 복합적 불균형이 자궁 부위에서 강력한 통증이라는 '신호'로 발현되는 것이죠. 마치 자동차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는 것과 같습니다.
경고등(통증)은 '엔진에 문제가 있으니 점검하라'는 몸의 소리인데, 경고등만 꺼버린다고 엔진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으니까요. 여기서 몸의 '엔진 문제'에 해당하는 단서들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바로 자율신경계 불안정, 혈액순환 장애, 그리고 만성 염증 반응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 가지 요소는 어떻게 서로 얽히며 생리통을 만들어내는 걸까요?
제가 진료실에서 살피는 실마리들을 하나씩 풀어가 보겠습니다.
세 가지 핵심 단서: 자율신경계, 혈액순환, 그리고 만성 염증
1. 긴장된 신경: 자율신경계 불안정
우리 몸의 자율신경계는 스트레스나 불규칙한 생활 습관, 과도한 업무 등으로 쉽게 균형을 잃습니다. 밤낮이 바뀐 생활이나 늘 긴장 속에 사는 분들은 뇌와 신체가 휴식 모드를 잊어버리곤 하죠.
교감신경이 과도하게 항진되면 혈관이 수축하고 근육이 긴장되어, 특히 자궁 주변의 혈류 공급을 방해하고 통증 역치를 낮출 수 있습니다. 이는 과거 의서에서 언급된 '찬 기운이 뭉친다'는 표현과도 상통하는 맥락을 가집니다.
작은 일에도 심장이 두근거리거나, 잠을 쉽게 이루지 못하고, 늘 몸이 뻣뻣하다고 느끼는 경험들이 이 자율신경계 불안정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긴장 상태는 자궁으로 가는 혈류를 더욱 좁게 만들죠.
2. 막힌 흐름: 혈액순환 장애
다음으로, 자궁으로의 혈액순환 장애는 생리통을 악화시키는 주요 원인이 됩니다. 혈액은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고 노폐물을 운반하는 우리 몸의 강물과 같습니다.
이 강물이 순환이 원활하지 않으면 자궁 내막 조직에 산소 공급이 부족해지고 염증 유발 물질이 축적되어 통증이 심해질 수 있습니다. 마치 물이 고이면 썩기 시작하는 어항과 같습니다.
물이 순환해야 깨끗하게 유지되듯이, 자궁 주변도 혈액이 잘 돌아야 건강합니다. 제가 뵙는 환자분들 중에는 유독 손발이 차거나 아랫배가 시리다는 표현을 자주 하시는데, 이는 자궁 주변의 혈액 순환이 원활하지 않다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3. 숨겨진 불씨: 만성 염증 반응
여기에 만성 염증 반응이 더해지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집니다.
몸속 어딘가에서 소리 없이 진행되는 만성 염증은 전신적으로 통증 민감도를 높이고, 자궁 내막의 프로스타글란딘 분비를 과도하게 자극하여 극심한 생리통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작은 불씨가 온몸에 퍼져나가면서 여기저기 약한 곳을 건드리는 것과 비슷합니다. 특히 알레르기 반응이 잦거나, 소화 기능이 늘 불편하고, 피부에 만성적인 트러블이 있는 경우라면 몸속에 보이지 않는 염증의 불씨가 숨어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러한 불씨는 자궁 통증을 더욱 증폭시키는 연료가 됩니다.
'B님'의 이야기: 복합적 신호를 읽어내다
제가 진료실에서 만났던 30대 직장인 B님은 항상 과도한 스트레스와 야근에 시달렸습니다. 잠을 깊이 자본 적이 오래되었고, 늘 가슴이 답답하고 불안함을 호소했죠. 이는 전형적인 자율신경계 불안정의 모습입니다. 동시에 B님은 극심한 소화불량으로 만성 변비와 잦은 복통에 시달렸는데, 이는 장내 환경의 불균형을 의미하며 몸속 만성 염증 반응의 중요한 단서였습니다. 이러한 전반적인 몸의 긴장과 염증 상태는 자궁 주변의 혈관을 더욱 수축시키고 혈액순환을 방해하여, 결국 "칼로 쑤시는 듯한" 생리통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통증만 볼 것이 아니라, 몸 전체가 보내는 이러한 복합적인 신호들을 읽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
결국, 진통제는 이러한 통증이라는 '결과'만을 일시적으로 억제할 뿐, 그 통증을 야기한 전신적 불균형이라는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합니다. 일시적으로 경고등을 끄는 것과 같죠.
그래서 많은 분들이 "진통제를 먹을 때뿐이에요"라고 말씀하시며, 점차 더 강한 진통제를 찾거나 복용 횟수를 늘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몸이 보내는 경고를 외면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만성적이고 고질적인 생리통을 겪는 환자분들께 집중하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통증이 발생하는 자궁이라는 부위만을 볼 것이 아니라, 자율신경계의 균형, 혈액순환의 원활함, 몸속 염증 반응의 조절 등 몸 전체의 건강 상태를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회복시키는 데 집중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증상 너머의 근원적인 실마리를 찾는 여정이죠.
통증 너머를 보는 지혜: 몸 전체의 회복
이러한 접근은 단순한 증상 완화를 넘어, 장기적인 여성 건강의 기반을 다지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몸은 항상 우리에게 신호를 보냅니다. 그 신호를 단지 불편함으로 치부하고 억누르기보다, 지혜롭게 읽어내고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헤아려주는 것. 그것이 우리가 스스로의 몸과 건강한 관계를 맺고, 고통에서 벗어나 회복의 주체로 설 수 있는 첫걸음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