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남자, 아토피 체질과 화폐상습진
피부의 '틈'과 몸의 '톤'에 대한 탐구
왜 아토피는 접히는 곳이 아닌 종아리에 생길까?
20대 중반의 한 남자. 초등학생 때 팔꿈치 안쪽을 긁으며 시작된 그의 아토피는, 긴 휴전 끝에 성인이 되어 다시 찾아왔다. 그런데 최근 몇 달, 싸움의 양상이 달라졌다. 전장(戰場)이 바뀐 것이다. 비교적 잠잠해진 팔꿈치 안쪽 대신, 단단한 하퇴 전면과 옆구리에 지름 2-4cm짜리 동전 모양의 붉은 진지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밤만 되면 더 가려워요. 긁다 보면 얇게 진물이 돌고요.”
접히는 곳은 멀쩡한데 종아리와 옆구리에만 동그랗게 솟아오르는 현상. 이것은 전형적인 아토피의 지도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우리가 풀어야 할 첫 번째 미스터리다.
피부라는 제방, 동전처럼 물이 고이는 자리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현상은 국소적인 ‘틈’과 전신적인 ‘톤’의 합작품이다.
하나의 거대한 제방을 상상해 보자. 제방 전체의 방수 기능이 약해져 있다면(전신적 아토피 경향), 물은 제방 전체에서 스며 나오지 않는다. 대신, 가장 압력을 많이 받거나 구조적으로 취약한 ‘틈’에서만 물이 동전처럼 고이게 된다. 피부도 마찬가지다.
그의 피부는 세라마이드와 천연보습인자(NMF)가 부족해 기본 방수 기능이 떨어진 상태였다. 그 위에, 하퇴 전면처럼 옷에 쓸리고 건조하기 쉬운 ‘지형적 약점’이 존재했다. 그는 하루 15-20분씩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보습은 주 2회 이하로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자극이 누적되자, 약해진 지형의 미세 균열로 수분이 빠져나가고 표피의 pH 균형이 무너지면서, 동전 모양의 경계가 뚜렷한 염증(플라크)이 고착된 것이다. 즉, 습진의 ‘모양’과 ‘위치’는 피부 장벽이라는 땅의 ‘지형’이 결정한다.
진균과 알레르기, 흔한 용의자들을 지우다
물론 다른 가능성도 확인해야 한다. 나는 언제나 가장 흔한 용의자부터 심문한다. 첫째, 스테로이드 장기 사용 시 의심되는 진균 감염(은폐 백선). 하지만 병변 가장자리를 긁어 시행한 KOH 검사는 두 번 모두 음성이었다. 진균 모델은 뒤로 물러났다.
둘째, 접촉피부염. 새로운 세제나 향수, 금속에 노출된 뒤 증상이 시작되었다면 유력한 가설이다. 하지만 그의 병변은 특정 부위에 고정되어 나타났고, 접촉과 증상 발생 사이의 명확한 시간적 연결고리를 찾기 어려웠다. 두 용의자 모두 알리바이가 있었다.
몸의 '바탕'과 국소의 '염증'을 읽는 한의학의 지도
나는 한의학이라는 다른 지도를 펼쳤다. 이 지도 위에서, 그의 상태는 두 개의 층으로 나뉜다.
기(基), 즉 바탕
그의 몸은 ‘혈허풍조(血虛風燥)’의 상태에 가깝다. 피부를 자양하는 혈(血)이 부족해 전반적으로 건조하고, 이로 인해 밤이 되면 가려움증이라는 ‘바람(風)’이 더 심해지는 것이다. 혀에 설태가 거의 없이 건조한 모습이 이 가설을 뒷받침한다.
표(標), 즉 현상
동전 모양으로 진물이 나는 국소 병변은 ‘풍습열(風濕熱)’이 뭉친 것이다. 건조한 땅 위에, 국지적으로 습기와 열기가 엉켜 붙어 염증 반응을 일으키는 양상이다. 현대의학의 ‘장벽 기능 저하’는 한의학의 건조한 ‘바탕(基)’과, ‘국소 염증’은 ‘습열(標)’과 정확히 포개어진다. 두 지도는 같은 땅을 가리키고 있었다.
한의학적 접근: 틈, 가려움, 면역을 동시에 다스리다
통합적인 진단은 “건성 아토피 피부염 바탕에 동전형 습진이 중첩된 복합형”이다. 따라서 치료는 제방의 틈을 메우고, 불필요한 경보(가려움)를 끄며, 제방 전체의 균형(면역)을 되찾는 작업으로 진행된다.
첫째
‘한약’으로 전신적인 염증 및 면역 반응을 조절한다. 이것은 문제의 뿌리인 몸의 '톤'을 바로잡는 과정이다. 건조한 바탕(혈허풍조)을 개선하고 면역계를 안정시키기 위해 당귀음자(當歸飮子) 계열의 약재를, 국소적인 염증 반응(풍습열)을 억제하기 위해 소풍산(消風散) 계열의 약재를 사용하며 몸의 전체적인 균형을 찾아간다.
둘째
‘침 치료’로 참을 수 없는 '가려움증'의 고리를 끊어낸다. 가려움은 피부의 문제가 아니라 과민해진 신경의 신호이다. 피부 병변 주위와 전신의 특정 혈자리에 침을 놓아, 가려움 신호를 뇌로 전달하는 신경 경로를 직접 조절하고 안정시켜 '긁는 행위'로 인한 2차 손상과 악순환을 막는다.
셋째
‘한방 외용제’로 무너진 '피부 장벽'의 틈을 메운다. 습진고나 자운고, 청대고 등 피부 재생과 보습을 돕는 한약재로 만든 한방외용제(한방연고)를 동전 모양 습진 부위에 꾸준히 도포한다. 이는 단순한 보습을 넘어, 손상된 피부 장벽에 직접 영양을 공급하고 보호막을 형성하여 제방의 '틈'을 물리적으로 보강하는 역할을 한다.
틈이 난 장벽과 불리한 지형이 ‘모양’을 만들고, 전신의 불균형이 그 모양을 ‘몇 번이나 되풀이할지’ 정한다. 결국 이 지난한 싸움은, 눈에 보이는 피부의 염증만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내 몸의 지형과 전체적인 균형을 다시 설계하는 과정이다. 지도를 이해했다면, 이제 길을 떠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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